네덜란드 (조지프 오닐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그것이 지리적 공간의 문제이든 아니든, 사람은 누구나 집을 그리는 존재다. 누구나 꺼내지지 않는 말, 가닿지 않는 말 사이에서 머뭇하며, 어떤 얘기든 종알대던 시기를 추억하고, 언제가는 엄마를 잃으며, 어린 시절의 공기가 불어올 때마다 뼈아픈 상실감을 견딘다. 모두를 그렇다. 모두들 애를 쓴다. "모든 사람들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향수병을 앓고 있다."
세상의 모든 도시는 이민자들로 채워지고 확장하는 공간이다. 뉴욕이든, 런던이든 세상의 어떤 도시에서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그 도시가 품은 그리움이나 상실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인도, 러시아, 폴란드, 콜롬비아, 세상 어디든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어린 시절을 남겨둔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곳에 모였다가, 이내 저마다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좁디 좁은 플랏의 한 칸 방으로, 커리나 중국 음식을 파는 어느 식당의 주방으로, 혹은 소설 <네덜란드>에서처럼, 도시 구석의 크리켓 경기장으로.
소설은 맨하튼의 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주인공 한스가 활기차고 야심찬 도시 뉴욕에서 9.11의 상실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가족과 멀어지고, 어머니마저 잃은 후, 더 이상 어떤 정치적인 입장이나 사회적 견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지쳐버린 시점에서 시작한다. "인생은 의지로 고쳐질 것 같지 않고, 사랑은 떠나가게 마련이고, 해야 할 말을 끝끝내 할 수가 없고, 온 세상에 지리멸렬함 투성"인데, 심지어는 공간마저 외롭고 차갑다.
그런 그가 어느날 크리켓을 발견한다. 뉴욕에서 영국식 크리켓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으니 말그대로 '발견'이다. 브루클린의 뒷골목에서 도박을 조직하는 검은 피부의 척, 대부분 택시 운전을 하거나 커리를 파는 식당에서 일하는 서아시아 사람들, 그리고 한스... 사는 모양새로는 비슷한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뉴욕의 한 구석에 모여 크리켓 경기를 한다.
미국식 잔디에서 유럽식 베트 타격을 고집하고, 버려진 땅을 살려 잔디를 키워 바운드가 좋은 크리켓 경기장을 지을 꿈을 꾼다. 이들에게 크리켓은 향수이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려는 열망이자, 외로움에 압도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며, 너도 나도 외롭다는 걸 말해주는 교집합이면서, 이를 위로하는 방법이고, 새 도시에 마음을 심는 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크리겟이 한스를 어떻게 한스를 구원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혹은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또 상실을 어떻게 보듬는가에 대한 이야기이자, 무엇보다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이든 런던이든 서울이든, 도시는 마냥 달콤하지 않고 사람들은 저마다 잃어버린 것을 그린다. 모두들 그렇다. 모두들 애를 쓴다. 모두들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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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깎은 서리 마을의 잔디 위에서 우리는 점잖게 승부를 겨루었고 낡은 목재 관람석에서 미지근한 맥주를 들이켰다. 집사처럼 생긴 나이 지긋한 코치가 볼링머신에 공을 집어 넣고는 기계가 친절하게 뱉어내는 롱홉이나 하프발리에 내 배트가 맞을 때마다 "멋진 타격입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모든 점이 마음에 들었고 영국식이었으며 황홀했지만, 나는 몇 시즌을 보낸 후에 그만두었다. 어머니가 지켜보지 않는 크리겟은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 p66
어머니는 하베이스트 클럽에서 편안한 시간을 누렸지만, 그곳을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다른 노인들처럼 활기차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는 재주는 없었다. 당구대와 술이 마련된 클럽하우스는 어머니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경기가 끝나면 어머니는 의자를 접어 들고 친숙한 얼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곧장 주차장으로 갔다. 이제야 나는 공이 베트에 맞는 똑딱 소리로 하루의 시간을 느긋하게 나누는 크리켓 시합의 광경과 소리와 리듬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깨닫는다. 이제야 나는 빨간 담요로 무릎을 덮은 채, 때로는 오전 열한시에서 저녁 여섯시나 일곱시가 되도록 그곳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 자문해본다. -p68
거리를 좀더 내려가자 여러 해동안 우리 클럽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스포츠광 사형제가 베트와 주먹다짐과 공과 축구화 따위로 야단법석을 떨며 살던 집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지 못하고 우리 패거리에 속했던 미카엘과 레온과 바스와 예프레이, 그리고 빔과 도날드 형제의 집으로 오해한 다른 집들이 나왔다. 이제는 아무리 손가락 휘바람을 날카롭게 불어도 그 아이들을 해질 녘 놀이에 불러낼 수 없다는 사실에 바보처럼 슬픔이 치밀었다. - p 128
사회학자들은 이런 장면 - 외국 태생의 사람들이 미국의 한귀퉁이에서 희한한 경기(크리켓)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이민자들에게는 작은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설명하길 좋아한다. 지당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모임을 결성함으로써 이 쓰라린 현실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향수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지리적인 공간이나 역사적인 공간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불안과 관련된 향수병이다. 따라서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뉴욕 크리켓의 이면에는 다른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크리켓과 마찬가지로 말 못한 개인의 열망들이 쓰여 있다. 그 열망은 오래전에 잃어버렸지만 환각처럼 떠오르는 지평선 너머에 대한 열망이며,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납득시키기 어려울 만큼 내밀하고 뼈아픈 상실감을 회복하려는 안타까운 열망이다. -p 170
논리적으로 반응하자면, 카도조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고 그리하여 그가 바보임을 일깨우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동경이야말로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대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길이 없다. - p 249
이 뉴욕의 의사는 틀림없이 낚시를 하는 게 행복한 듯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일에 지친 사람에게 최고의 위안이 있다면, 세상의 범위를 축약하는 것일 테니, 시야를 입 주의 공간으로 축소하는 것이야말로 무척 위안이 되는 일일 것이다. 어쨌튼 나는 그가 무척 부러웠다. -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