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2 01:05

시작하는 일 교육개발협력 사업.평가

그래서, 이제 무슨 일을 할지 물어주는 분들이 계셔서… 그간 입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리하는 과정에 마음이 가 있었어요.

3월부터는 에누마(Enuma)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에누마는 태어난 나라, 사는 지역, 장애 유무, 부모나 교사의 도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기술을 통해 양질의 학습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누구나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앱”을 만드는 교육 스타트업입니다.

진작 알고 있던 회사였어요. 우리 집 어린이가 에누마가 만든 토도수학의 팬이기도 하고, 언제가 봤던 대표님의 인터뷰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와! 사업 목표를 이렇게 야심차고 분명하게 쓸 수 있다니!’ 싶었어요.

“전 세계 모든 7살 아이들이 학교 수업 따라갈 수 있게 준비시켜 주는 것. 전 세계 모든 2학년들이 2학년 문제를 풀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저희의 목표에요. 살아가는 세상은 달라도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보통 잘 사는 사람들만 누려서 그렇지 기술은 이미 와 있어요. 이 기술을 정교하게 잘 활용해서 기회를 열어주고 싶어요.”

사업논리모형, 로지컬 프레임워크 여럿 읽고 써봤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와 닿는게 있었습니다. 목표가 큰 팀이다, 그런데 분명한 제안이 있다, 할 것 같다, 좋다, 싶었습니다.

인터뷰 제안 받고 찾아 읽은 기사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하는 문장이 있었어요. 그 말에 꽂혀서 에누마는 어떤 분들이 모인 팀인지 매우 궁금해졌고, 인터뷰를 거치면서는 처음의 호기심이 같이 일하고 싶은 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하드웨어’에만 집중했어요. 2008년 MIT에서 ‘아동 한 명당 컴퓨터 한대를 주자 주자(one laptop for one child)’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던 적이 있어요. 한 대당 100달러가 안 되는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교육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는데, 국제기구나 각 국 정부도 여럿 동참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안됐어요. 현지 태양열로는 컴퓨터를 돌릴 정도가 안됐고,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기기 자체가 다루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하드웨어 문제를 넘어서서 마땅한 소프트웨어가 없었어요.”

“저희가 만들었던 ‘토도수학’ 앱은 ‘장애아동’이나 ‘수학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거든요. 그걸 확장시켜서, ‘교육 기회가 제한됐던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앱’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 ‘토도수학’을 만들어봤던 저희로서는 답을 알 것 같았고요.”

이토록 목표가 분명하고 해내고픈 과제가 확실한 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가슴 두근두근 하는 도전으로 느껴져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에누마가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 도전하며 탄자니아를 필드로 개발한 ‘킷킷스쿨’을 확산하기 위한 UN, GO, NGO 파트너십을 만들고, 필드 적용과 학습성과에 대한 리서치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태블릿 기반 학습이 확산될 때의 부작용을 미리 짚어서 대비하고, 현지에 적절하게 맞는 상황을 찾아보자는 과제를 안고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면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서 배우고 익히는 모습을 볼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초등학교 4-5학년을 다니고도 읽고 쓰는 걸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들의 무력감, 좌절은 어떤 것일지, 그럼에도 온갖 어려움을 딛고 교실에 나와 뜻도 모르는 칠판 글씨를 베껴 쓰는 정성을 무얼지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내가 힘을 보태고 싶은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교실 안팎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넘어서는 처음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고요.

어떻게 가르쳐야 아이들이 글을 익힐지, 어떤 환경에서라야 읽는 습관이 생기고, 어떤 기술의 도움을 통해서라야 아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 지가 궁금하고, 학교를 지키는 선생님들에게 힘이 되고 싶고, 아이들의 고통에 무덤덤한 교육정책가들을 흔들고 싶고. 그러자면 낙관할 만한 제안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에누마에서 일하며 그 방법 가운데 하나를 찾아보고 싶어요.

스쿨미 프로그램 할 때, 디렉터가 ‘우리가 이 사업의 끝에 만나고 싶은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질문을 늘 던져줬었는데, 저는 자원과 기회가 열악한 지역의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인 문제 해결자’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답을 냈었어요.

스스로를 믿고 역경을 해치고 나아가는 힘이 있는 아이들. 이야기의 힘을 알고 자기 서사를 써나가는 아이들. 그걸 돕는 교육. 그런 독자를 키워내고 기다리는 문해 교육.

어려운 환경이니까, 살면서 부딪칠 무수히 많은 힘든 순간에, 저 스스로를 지켜내도록 도와줄 ‘이야기’ 들이 아이들의 유년기에 풍성하게 쌓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교육사업 가운데 ‘I’m learning'이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 자꾸 세이브, 당연히!) 우리 집 아이도 무언가에 몰두하고 나면 “엄마, 나 그거 알아요. 내가 배웠어.” 합니다. 깨우쳤다는 의미일텐데, 바로 그렇게 “나는 배우고 있다”는 목소리를 아이들 스스로 내는 것만큼 즐거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 장면을 그리며 새로운 길 가보려 합니다.

초기 읽기 쓰기 교육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삶에 평평한 출발선을 만들어주는 일이고, 아이들 한명 한명을 자기 주도적인 독자로, 학습자로, 문제 해결자로 키워내는 일이라고 배우고 경험했으니까.

엔지오는 회사든 상관없이, 제게는 이어지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좋은 책 골라 소개하던 인터넷서점 엠디이기도 했으니까, 얼핏 보면 비뚤비뚤 이어지는 길이지만 내 길이라고 믿고 잘 만들어보고 싶고요

에누마(Enuma)라는 회사 이름이 하나 하나 센다는 뜻의 영어 단어 Enumerate에서 따온 거라고 하네요. 한명 한명을 세듯,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배움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이 팀이 포부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야밤 노동하다가 잠 깨려고 썼는데, 쓰다보니 무지 기네요.)


덧글

  • 이요 2018/04/07 13:32 # 답글

    화이팅!!
  • cklist 2018/04/08 03:10 #

    응원 감사해요! 이렇게 써놓은 말들을 어떻게 책임질까 살짝 겁나지만, 뭐 '하다보면 또..' 하고 있어요.
  • 2018/04/10 14: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5/09 23: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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