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3 15:16

나는 나대로, 마음이, 편하다. 개발 학/업 노트

<거대한 역설> (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을 읽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국제개발’학’을 한다는 건 철두철미 정치학, 정치사회학이어야 한다는 ‘내 입장’이 어느 정도는 생겼기 때문이다. 지구촌 빈곤과 발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주장들'이야말로 분석이 대상이다. 남들이 빈곤완화 대책의 효과성을 공부하면, 나는 그 빈곤완화 대책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프레이밍 되고 어떤 재원을 가지고 실행되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봐야겠다. 빈곤층에만 시야를 한정할 필요도 없다. 아니,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적 개발 전문가, 국제개발협력 업계의 전문가가 되지 못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세계은행의 자료를 학문적 레퍼런스처럼 인용해가며 프로포절을 쓰고, 지구촌 빈곤과 불평등을 조각 내어 지엽적 처방을 기획하고, 세계은행이나 OECD 같은 곳에서 하향식으로 내려진 개념들을 땅에 앉히는 작업에서는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대신 개발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선택 (혹은 기획, 프로젝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력은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공부를 계속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연구든 프로그램이든 개발업계 기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은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업이 차라리 괜찮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어떤 개발 담론이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살펴볼 수 있다. 원조공여기관에 적게 기대고 있고, 대게는 기부자에게 후원을 받는 기관이라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후원자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내 주장을 갖고 연구자로 밥벌이를 할 수 없다면, 밥벌이 따로 공부 따로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역시 시간과 집중력이겠으나 인생 짧지 않으니 지레 우울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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