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4 00:19

<거대한 역설>에서 밑줄; 신자유주의와 빈곤 거버넌스, 빈곤 완화 정책의 정치학 책으로 읽는 발전론

거대한 역설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 / 교양인<거대한 역설>에서 밑줄.

* 1980년대에 시작된 구조조정 정책에 이어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무역기구는 자유화 정책을 일률적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구조 조정 정책이 빈곤층의 취약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한 국제금융기구들은 빈곤 문제에 대응해 '거버넌스' 메커니즘을 고안하여 정당성의 위기를 불식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267쪽)

*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 조정 정책의 '민주화'가 시도되었다. 그런 움직임 속에서 국제 금융 기구들은 각국 정부와 NGO들에 정책 형성과 이행을 '자기 일처럼 책임지고' 추진할 것을 장려했다. 그 후 1999년에는 아프리카 채무국들을 염두에 두고 최빈국 부채 경감 계획의 확대판이 나왔다. 새로운 정책은 광범위하고 참여적인 빈곤 감소 전략을 적용하기 위해 구조 조정 정책에 '조건부 규정'을 새롭게 적용했다. 세계은행 총재는 '시민사회혁명'을 거론하면서, "신뢰와 지속 가능성을 배양하기 위해... 포용과 참여, 시민 사회와 현지의 경쟁, NGO들, 민간 부문, 그리고 빈곤층을 한 자리에 결속한" 토대 위에서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68쪽)

* 이런 맥락에서 세계은행은 전 세계 50개국의 빈곤층 남여 6만 명의 증언을 모으는 이른바 '빈곤층의 목소리(Voice of the Poor)'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자국 정부의 부정부패에 깊은 불만을 표시했고, 자국의 개발에 세계은행이 더 개입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이것이 세계은행의 정당성 강화 작업에 불과하다고 암시했다. 이 연구가 진행되던 중, 최빈국들의 외채가 1996년부터 1999년 사이 590억 달러에서 2050억 달러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268쪽) (Rademacher, Anne, and Raj Patel. 2002. "Retelling Worlds of Poverty: Reflections on  Transforming Participatory   Research for a Global Narrative". In Knowing Poverty: Critical Reflection on Participatory Research and Policy, edited by K.Brock and R. McGee, London: Earthscan)

*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외채 상환에 집착하던 국제 금융 기구들은 참여적인 수사를 동원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단장하고, 전 세계 NGO 지도자들을 세계은행의 네트워크에 포함했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던 구조조정정책은 '동반자 관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했고, 각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발전 계획을 입안하여 국제금융기구의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새로운 과정을 거쳐 유상 차관, 외채 상황 조건 변경, 부채 탕감 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빈곤감축전략보고서(PRSP)라고 알려진 이 계획은 각국의 '이행성과'를 집계하는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국제금융기구들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구조 조정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에 NGO, 교회 기관, 노동조합, 기업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발전 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빈국 감축 전략보고서는 일종의 위기관리 방안이었고, 국제 금융 기구들의 남반구 관리에서 새로운 단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269쪽)

*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세계은행은 원래 공공 인프라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차관에 초점을 맞췄다가, 1980년 대에는 시장 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아 국제금융기구의 발전 철학이 남반구의 구조 조정을 위한 정책 차관(policy loans)을 제공하는 쪽으로 활동 초점을 이동했다. 하지만 그 후 빈곤감축전략보고서 도입을 계기로 세계은행의 초점이 개발 과정의 조건(process condition)을 강조하는 쪽으로 한번 더 변했다. 2002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빈곤감축전략보고서를 "저소득 국가의 빈곤을 줄이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서, 각국이 자체적으로 계획한 빈곤 감축 전략에 기반을 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빈곤 감축 문제의 책임을 해당 국가에게 넘기겠다는 발상은 공적인 정책 우선순위를 민간 활동에 - 사실상 '거버넌스 국가(governance states)'를 만들겠다는 - 것이었다. (269쪽)

* 빈곤 거버넌스의 내용에는 국제 NGO들이 정보와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는 일도 포함된다. 그 결과 오늘날 아프리카의 실패한 국가들에는 국제 NGO인 월드비전과 국경없는의사회가 각각 교육과 의료 부문에 대단히 많이 진출해있다. 예를 들어 옥스팜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빈곤 감축 전략 보고서 덕분에 옥스팜이나 다른 NGO들이 지방, 국가, 국제 차원의 정책과 행동에 - 입안 단계와 실행단계 모두에 - 영행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러한 국가의 민영화 (privatization of states)는 초국적 정책 네크워크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경우, 세계은행이 설립한 전문 연수 기관인 아프리카 정책연구소포럼 (African Policy Institute Forum)이 초국적 정책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각국의 빈곤 감축 전략 보고서의 준비 과정을 도와주기도 한다 (270쪽)

* 이제 더는 민영화가 공공자산을 매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민영화는 국가가 전 지구적 시장의 중개자로서 초국적 정책 네트워크에 통합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국제 NGO 공동체와 국제 금융 기구들은 수원국-공여자 동반자 관계에서.... 일종의 시민 사회의 대리자 역할을 각각 행하고 있다." (270쪽) (Abrahamsen, Rita. 2004 "Review Essay: Poverty Reduction or Adjestment by Another Name?", Review of African Political Economy 99:184-87.)

* 시장 접근성을 장려하면, 국가의 권위를 '시민 사회'의 권위가 보완(혹은 오도)함으로써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새롭게 구성된다. 예를 들어 국제금융기구가 부과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민사회가 '예산 모니터링'을 한다거나, 국가의 민주적 정치 과정을 규율할 수 있는 '감시 구조'를 마련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감시 매커니즘에는 NGO 중개자를 통해 빈곤층에 미소 금융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정책을 합리화하는 논리는, 미소 금융을 통해 빈곤층이 의존하던 생존 네트워크 - 세계은행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보는 -를 빈곤층의 돈벌이 활동으로 대체하고, 그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빈곤의 거버넌스는 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전 사회를 시장적 계산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271쪽)

*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기업만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역시 공공 예산을 절감하거나 또는 민간 부문에 특혜를 주려고 공공 서비스를 하청 계약으로 처리한다.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과 국제 금융 기구들은 공공 서비스의 아웃소싱을 장려하는데, 대체로 공공 시설 관리에 관한 독점 권한을 사기업에 넘겨주고, 정부의 '거버넌스' 기능을 NGO에 의존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271쪽)

* 발전의 틀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누지 않고,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 양상으로 파악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뒤따른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개발 기관과 개발 관련 전문가는 직업적인 이유 때문에 대증 요법만 다루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최하위 10억 명'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 -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처럼 빈곤층에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 - 을 내놓기 쉽다. 이런 접근 방식을 채택하면 경제적, 사회적 대책을 어떻게 적절히 배합할 것인가 하는 점엔만 신경을 쓰거나, (개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려하기보다는) 개발의 개입 범위와 규모를 조절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512쪽)

*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에 접어들어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마치 사회와 경제 양극단을 오가는 시계추처럼, 개발의 대상으로서 국가를 강조하던 데서 벗어나 직접 시민들 쪽으로 개발의 추가 다가가는 변화가 생겼다. 또한 개발의 추는 개발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쪽으로도 움직였다. 그런데 참여는, '개발 주체의 핵심'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기 위한 리트머스 테스트처럼 여겨졌다. 예를 들어, 참여 주체가 빈곤 감소 대책을 내놓는 국가이든, 소액 대출을 신청하는 개인이든, 또는 NGO가 주도하는 사회적 동원이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시장 활동을 통해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보장했는데도 그들이 가난하다면 그들 자신의 책임이 되는 것이 (512쪽)

* 참여는 양날을 지닌 칼이 될 수 있다. 참여를 허용했다는 명분으로 특정 정책이나 개발 대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 권리, 권력에 기반한 기존의 불평등한 접근성을 그대로 둔 채 참여만 강조했을 때 그 결과는 형식적으로는 정당하나,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발의 역설이 다시 나타난다. 참여적 방법을 썼는데도 여전히 불평등이 재생산되고, 그러면서도 빈곤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개발이 최고라는 식으로 개발이 계속 정당성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5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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