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4 09:12

<거대한 역설> 서평: 왜 개발학수록 불평등해지는가 개발 학/업 노트

제가 쓴 <거대한 역설> 서평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그 5월 호에 실렸습니다.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56호] 2013년 05월 13일 (월) 17:35:43김현주 info@ilemonde.com

  

<거대한 역설> 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 교양인 펴냄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사바르에서 의류공장 건물이 무너져내려 400여 명이 숨졌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2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공장주에게 떠밀려 건물에 금이 간 줄 알면서도 공장에 나갔다. 미국과 유럽으로 팔려나갈 값싼 옷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고는 지구화된 경제의 노동 착취 사슬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여기에는 노동 착취를 통해 저가 의류를 생산해온 북반구 의류업체, 이에 무임승차한 소비자, 방글라데시 정부와 공장주의 책임이 있다. 이에 북반구의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으로 의류업체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도 무역 제재를 경고했다. 그러나 공장이 문을 닫으면 생계 수단을 잃는 건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노동 착취 공장은 규제가 약한 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이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노동이 더 혹독한 경쟁에 내몰리는 '개발의 역설'이 생겨난다.

'개발'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제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식량주권 운동가이기도 한 필립 맥마이클은 <거대한 역설>에서 이 질문을 파고든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8%에 이르는 인도에서 5살 미만 어린이의 절반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농민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굶주리는 것을 보면 개발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가져온다는 암묵적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맥마이클은 개발이 오히려 불평과 빈곤을 확산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님을 보여준다. 개발 혹은 경제성장은 아무런 의심 없이 추구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국제 질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들이 통치를 위해 동원한 일종의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수혜자는 국제금융기구와 초국적 기업이며, 최대 피해자는 전세계 빈곤층이다.

책에 따르면, 개발은 역사적으로 3단계로 나뉘어 다르게 구성됐다. 개발 프로젝트 시대(1940~70년대),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1970~2000년대), 그리고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의 형성기가 그것이다. 개발(Development)은 20세기 중반에 정치 담론에 등장했다. 변화의 포문을 연 것은 1949년에 있은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취임사였다. 트루먼은 낡은 제국주의와 선을 긋고 산업화를 통해 '저발전'(Underdeveloped) 지역의 성장을 이끌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남반구는 개입이 필요한 '저발전' 지역으로 이름 붙여졌고, 냉전 구도하에서 이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조율하는 일이 개발의 주된 내용이 되었다.

그 뒤에 나타난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는 국가가 시장의 종이 된 시대다. 남반구의 자원과 시장에 접근을 확대하고 싶던 세계은행은 개발을 '세계 시장 참여'로 규정하고 전 지구적 경제 단위로 바라봤다. 남반구 신생 정부에 채무 불이행 우려를 들어 구조조정 정책을 강요했다. 세계시장과 경쟁하려면 공공지출 삭감, 국영기업 민영화, 농업 자유화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주목할 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는 역설적으로 원조와 개발협력이 중흥한 시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전세계 시장을 통합한 결과 지구적 차원에서 불평등이 악화됐는데 시장 친화적 발전을 계속 추진하려면 이에 대한 위기 관리, 즉 정당성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은행이 제시한 '빈곤 거버넌스'라는 정책 틀 아래에서 추진됐다. 세계은행은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데 대한 비판을 받아들여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NGO), 빈곤층을 포용하고 이들의 참여를 강조하는 데로 나아갔다. 차관 대출을 위한 조건 문서인 빈곤감축전략문서(PRSP)에 빈곤층의 목소리가 담기도록 하는가 하면, NGO에 지방·국가·국제 차원의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그러는 동시에 남반구 정부가 예산을 축소하고 공공서비스를 민간부문에 아웃소싱하도록 계속 장려했다. 맥마이클은 이를 참여적 수사를 동원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단장한 시도로 평가한다. 자원과 권력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을 그대로 둔 채 참여만을 강조할 때 참여는 양날의 칼이 된다는 것이다. 참여적 방법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보장했는데도 그들이 가난하다면 이는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 지적은 '개발 프로젝트 시대의 총아'이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어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넓혀가는 한국의 현재를 비춰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개발은 천의 얼굴을 가진 말이다. 이는 압축적 경제발전 경험을 뜻하는 동시에 새만금 개발, 서울 용산 재개발, 4대강 개발에서처럼 사회적·생태적 가치를 금전적 가치로 폭력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낳는 신음을 드러내는 현재형의 개념이기도 하다. 요컨대, 개발에 대해서라면 한국 사회는 이를 경제발전으로만 이해해왔을 뿐 여전히 그 의미와 철학에 대해 숙고하지 못했다. 나아가 '개발' 앞에 '국제'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그 의미가 다시 한번 틀어진다. 국제개발협력을 구성하는 담론에서는 '한국적 개발 경험 전수'가 맨 앞으로 나오고, 개발의 정치적 성격이나 개발 담론을 둘러싼 국내의 현재진행형 갈등이 숨어버린다. 개발 담론을 둘러싸고 국내와 국제의 구분이 일어난다. 바로 이 지점이 <거대한 역설>에서 지적하는 부분이다. 책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기반한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에 원조는 빈곤 완화와 사회복지에만 초점을 맞추며 더 넓은 의미의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데 무관심하다. 그래서 이런 활동 자체가 지구화 프로젝트에 정당성을 계속 부여해주는 수단이 된다.

지구화 프로젝트의 미래는 어떠할까? 정당성의 위기는 세계 곳곳에서 소요를 낳고 있다. 중간소득 국가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문제는 오히려 심화돼 세계 빈곤층의 4분의 3이 이 지역에 살고 있고, 빈곤층의 시장 참여를 도울 해결책으로 주목받던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일부 남반구 국가에서 악덕 사채로 변질됐다. 아랍에서는 높은 청년 실업률 문제와 식량 위기가 맞물리며 혁명이 일어났고, 북반구에는 금융위기가 강타했다. 이 모든 일이 시민권적 사회계약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힘이 약해지는 과정과 맞물려 일어났다.

맥마이클은 이런 조건들 속에서 지구화 프로젝트에서 '지속 가능 프로젝트'로 개발의 의미가 다시 한번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금융위기, 에너지 위기, 기후변화 등이 전세계를 강타하는 상황에서 개발은 이제 다가올 미래를 관리하는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엔 기구들과 북반구 정부들이 개발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기보다 기후변화나 식량 위기에 대한 대응을 기존 개발 관행에 맞추도록 하기 위해 고심하는 데 비해, 지역에 기반한 공동체들은 개발을 사회운동으로 보며 대항 담론을 만들어낸다. 전자가 탄소거래제, 녹색기술 등으로 실현된다면, 후자는 풀뿌리 환경 운동이나 농생태학에 바탕한 토지 회복 운동, 도시 농업 등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발전 내용을 두고는 긴장이 뚜렷하다.

다행이라면 사람들이 거대 프로젝트의 희생자로만 머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이 보여주듯, 세계 시민들이 개발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역사적 과제에 함께하고 있다. 그것이 개발 과정에서 사회적·생태적 가치를 회복하는 방향이 될지, 아니면 지구적 프로젝트를 공고화하는 데로 나아갈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맥마이클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개발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한다. 개발 개념을 재구성하고 민중의 편으로 가져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옮긴 조효제 교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개발, 그저 선의를 품은 개발은 없다며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어떤 성격의 개발인지를 짚어봐야 한다는 힘있는 문장으로 이 책이 던진 시대적 과제를 정리했다. <거대한 역설>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읽혀야 하는 이유를 함축해 보여주는 말이다.

출처: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3


덧글

  • 여르미 2013/05/24 17:38 # 답글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는데 마침 올려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 시간 되면 책도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네요.
  • cklist 2013/05/30 23:05 #

    넵, 고맙습니다~ 답인사가 늦었습니다^^
  • 샤프가이다 2013/07/12 17:47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개발의 본질,,, 의미,,, 철학,,, 등등 조금씩 알게 될수록 어렵고, 복합적이란 생각을 했었는데요. 개발의 담론이 지금까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꼭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hero4earth 2013/09/24 21:51 # 삭제 답글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 cklist 2013/09/25 08:07 #

    인사 남겨주셔서 저도 감사드립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