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3 10:34

[읽은 책]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윤상욱 책으로 읽는 발전론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윤상욱 지음 / 시공사

주말에 읽은 책. 주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을 지낸 윤상욱 외교관이 썼다. 한국의 외교관이 아프리카에 대해 썼다고 하면 자원개발이나 빈곤층 시장에 대한 투자 안내서에 가깝거나 일부 아프리카 정치인들과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기술한 책이겠거니 하고 눈길도 안 줄만큼 기대가 낮은데, 이 책은 다르다. 애정을 갖고 공부를 하고, 분명한 관점을 세우고 단단하게 채워나간 책이다.

그간 아프리카의 빈곤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대부분이 국내에 맥락없이 소개된 번역서였다. 그 책들 한권 한권이 품고 있는 주제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맥락없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한결 같이 아쉬웠다. 대부분의 책은 그때그때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받는 빈곤퇴치 해결책이나, 빈곤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앞다투어 소개하기 바빴다.

새로운 책이 소개될 때마다 더 많은 원조냐 민간 투자냐, 자원의 저주냐 축복이냐, 거버넌스의 개선이나 개인의 행동 개선이냐 하는 논쟁이 잠깐씩 오가다 사그라들곤 했다. 새로운 책이 더해질 때마다 마치 유행이 바뀌듯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런 현상이 낳은 부작용 가운데 하나는 아프리카와 그 지역의 빈곤을 바라보는 역사적 시각을 채 세우기도 전에 '내일의 해결책'에만 경쟁하듯 주목하게 된다는 점이다.

요컨대, 아프리카에 관한한 우리는 늘 조급하다. 그 땅과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할 시간과 기회를 갖기도 전에 자원봉사든 자원개발든 저소득층 시장을 겨냥한 비즈니스든 아프리카에서 저마다 하려는 일을 내세우며, 그것을 위한 근거찾기에 몰두한다. 이 모습이 아프리카를 '읽는'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과거를 모르니 현재의 고통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되기 쉽다. 이 '단절'은 현재와 미래를 왜곡케 하고, 타자로써 한국인을 어떻게 세울지 혼란스럽게 한다.

윤상욱 외교관의 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반갑다. 아프리카의 빈곤에 관심을 갖고 그 해결을 위해 뛰겠다는 사람들 가운데 과거 아프리카의 눈물과 상처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가운데 얼만큼이 지금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과거 아랍인이나 유럽인의 그것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다른 대륙의 교류사부터 빈곤의 문제, 아프리카가 가진 새로운 기회와 도전까지 폭넓게 다루는 책인 만큼 입문서로 적절하다. 미국와 유럽이 축적한 아프리카 학의 연구 결과와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주요 논의들을 소개하면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려 노력했다.

기아와 질병으로 묘사되는 빈곤의 현상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은 고통을 묘사하는 대신, 그 고통을 낳은 원인 - 아프리카가 왜 그토록 고통받는지, 그 고통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묻는다. 그로부터 아프리카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데로 나아간다. 

* 아래는 밑줄 그은 내용들  

- 아프리카의 흑인 지도자들이 '우리 아프리카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이 용어는 대게 193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 정체성, 즉 네그리튀드 negritude 회복 운동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노예 무역과 식민 지배를 거치며 서구인들이 제못대로 왜곡시키고 짓밟았던 흑인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다. 그런 의미에서 노예로 삼을 흑인들을 잡아 사하라 사막을 건너 아랍 상인에게 팔았던 베르베르족과 투아레그족은 물론이고,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의 아랍인처럼 흑인 노예를 구매했던 이들은 흑인 정체성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21쪽)

- (중략) 이와 같이 독립 이후 아프리카는 20세기 초 흑인 선구자들이 회복하고자 했던 흑인 정체성을 저버렸다. 나세르나 가다피의 과장되고 허황된 슬로건과 경제적 지원에 가려 아프리카인들은 범아랍주의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죽이고 헐벗게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32쪽)

- 수백 년간 유럽인들이 왜곡시켜왓던 아프리카의 모습을 되찾고 문화적으로도 식민 지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프리카 지식인들의 노력은 유네스코의 <아프리카사 개론 General History of Africa> (1999) 완성을 통해 결실을 얻었다. 총 8권으로 구성되어 13개 언어로 출판된 이 <아프리카사 개론>이 완성되기까지는 총 35년 이라는 세월과 230여 명에 달하는 역사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참가자 중 3분의 2가 아프리카 학자들이었을 정도로, 이 작업에 대한 아프리카 지식인들의 참여 열기는 대단했다. (45쪽)

- 대서양 노예무역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인디 대부분은 유럽인만을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주범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랍인들의 아프리카 노예 거래는 대서양 무역 뒤에 가려져왔지만 최근 조금씩 그 잔혹한 실상이 드러나면서 유럽에 못지 않았음이 알려지고 있다. 1441년 포루투갈의 서아프리카 해안 탐사를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출발로 서술하는 역사서들은 진실의 절반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81쪽)

-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관한 또 하나의 이슈는 그것이 현대 아프리카의 사회와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노에로 끌려간 흑인들의 고통스런 장면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남겨진 자들의 땅, 아프리카 사회가 수천만 명의 가족을 노에로 보낸 이후 어떻게 지탱되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 남긴 흉터는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흉터를 다룬 연구들은 이 부끄럽고 우울한 과거가 오늘날의 아프리카 현실과 모순의 한 권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81쪽)

- 서구 학자들과 아프리카 일부 지성인들이 아랍 노예 무역의 실상을 고발해왔지만, 이를 근거로 아랍에 책임을 묻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없다. 대서양 노예 무역은 박해받던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각성시켰으나, 아랍 노예 무역은 그러지 못했다. 18세기 이후 전 지구적 헤게모니를 쥔 서구에 대한 반감은 아랍과 아프리카를 같은 피해자로 느끼게 했고, 아랍 노예무역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덮어왔던 것이다. 가해자인 아랍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외면한 아프리카의 지도자들 역시 공범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87쪽)

- 역사학자 올란도 페터슨의 표현대로 노예 생산 과정은 '사회적 죽음'의 생산 과정이었다. 이 사회적 죽음의 과정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독립 이후 일어났던 아프리카적 현상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아프리카의 노예 생산 과정에서 아프리카인들 스스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아프리카인들 서로가 싸우는 과정에서 노예가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서양으로 건너난 흑인 노예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인 셈이다. 그 사이에서 노예를 사들이는 유럽은 아프리카의 폭력을 부채질한 것이다. (94쪽)

- 정복 전쟁이 끝나 더 이상 전쟁 포로가 잡히지 않자, 이제 아프리카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사람들을 팔기 시작했다. 이미 유럽제 물건에 중복되어 버린 권력자들은 노예를 끊임없이 팔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중략) 이제 아프리카 전역은 폭력이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 먹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부족과 마을들은 과거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을을 습격했다. 폭력과 불신이 증폭하고 무시무시한 공포가 주변을 떠도는 곳에서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가족밖에는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먹는'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의 범위는 부족, 씨족, 가족 단위로 좁혀졌다. 아프리카의 파편화는 이를 표현한 것이며, 인근 부족, 이웃 마을 사람들 간 불신과 증오의 기억은 훗날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96쪽)

- 세계은행은 하루 2-20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이들을 아프리카의 중산층으로 정의한다. 아프리카에서 이들의 숫자는 약 3억 명이며 그중 3분의 2는 하루 2-4달러를 버는 사람들이다. (중략) 이들 하위 중산층의 형성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문제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왜 가난한지, 정부는 왜 존재하며 공무원들은 왜 부유한지, 빈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은 어떤 정당 소속인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도시 인구가 나날이 늘고 있는 환경에서 이들은 정부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미래에 있어 더 없이 소중한 부분이다. 아프리카의 상류층들이 대부분 정권의 혜택을 받는 기득권층인 것에 반해, 하위 중산층들은 현상 유지보다는 변화를 원하고,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해 주는 정부를 선택하려는 의식을 키워나가기 때문이다. 과거 아프리카 중산층들이 대부분 공공 분야에서 일하던 것과 대조적으로 최근의 중산층들은 주로 민간 분야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들은 정부의 무능과 비효율, 부정부패를 매일 느끼고 산다. (318-319 쪽)

- 서구는 중국과 아프리카를 상대로 대화를 시도하는 한편, 군사적 개입도 강화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에 중국의 성장세를 막을 수는 없을 듯하다. 자원과 소비 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중국의 의미가 강력한데다가 실용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개발 지원 논리도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중략)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본다거나 중국의 행태를 비난만 해서는 나아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중국에 대한 비판론에 과정은 없는지, 그리고 현실은 어떠한지를 냉정하고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낫다. 즉 현재 중국이 아프리카에 주는 혜택은 무엇이며, 언제까지 줄 수 있는지, 실용주의와 내정 불간섭 원칙을 포함한 중국식 개발 모델은 언제, 어떻게 한계와 모순에 봉착할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오히려 아프리카를 위한 공리주의적 접근이다. (359쪽)

- 사실 중국의 원칙들은 잠재적으로 문제전으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내정 불간섭 원칙은 두 나라 사이가 우호적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만약 수단이나 짐바브웨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 중국 기업과 교민들의 기득권을 철폐하려 할 때도 중국 정부가 이를 묵과할 것인지는 장담 할 수 없다. 최근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 조건 등을 이유로 남아공, 탄자니아, 레소토, 잠비아에서 반중국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중국 정부의 고민거리다. (360쪽)

- "중국은 아프리카 정책을 갖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중국에 대한 정책이 없다." (케냐의 한 일간지) 어떻게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유럽은 아프리카에서의 중국을 철저하게 연구할 것이고, 그들 스스로 기존의 아프리카 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361쪽)

덧글

  • quellen 2012/08/13 17:16 # 삭제 답글

    서평 감사합니다. 전직 인문서적 MD이신데다, 현재 개발원조 NGO에 일하시니 만큼 쓰신 서평이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네요. 저자로서 기쁩니다. 저는 이제 곧 아프리카를 떠나는데, 지난 2년간 Save the Children 이 여기 세네갈에서 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못드려 아쉽네요.
  • cklist 2012/08/14 10:32 #

    댓글 고맙습니다. 애써주신 덕분에 좋은 책 읽을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하고요. 블로그 운영하면서 책 추천 의뢰를 종종 받는데, 선뜻 권할 수 있는 책이 생겨서 좋네요. 세네갈 생활 건강히 마무리하시길요^^
  • 愛天 2012/08/13 19:39 # 답글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입니다.
    마침 Wars, Guns, And Votes랑 같이 비교해서 읽으니 잘쓰인 책이란게 더 느껴지더군요.
  • cklist 2012/08/14 10:33 #

    반갑습니다^^ 폴 콜리어 책들은 요리조리 뜯어가며 (?) 읽어야 하더라고요~
  • sharpguyda 2012/08/30 17:52 # 삭제 답글

    저는 지금 나이지리아에 거주하고 있는데요.... 이곳에 오기 전에도, 오면서도 궁금했던 주제가 노예무역이었는데요.. 그래서 관련 논문도 찾아서 읽어보고 했었는데요... 이번에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출장오시는 분들께 부탁해서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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