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1 10:37

<수비의 기술>, 채드 하버크 책_읽고 쓰고

월차 내고 집에서 노는 하루. 마지막 장면이 손꼽히게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수비의 기술> (채드 하버크 지음, 문은실 옮김).

운동장 구석에서 야구공을 가지고 노는 호리호리한 "계집애'로 불리던 헨리는 대학 4년을 꼬박 쏟아붓는 엄청난 노력 끝에 '천재 외야수'로 거듭닌다. 이제는 승승장구만 남아 있는 상황. 그런데 드래프트를 몇 주 남겨놓은 시점에서 한치 오차 없이 우아하고 자연스럽던 그의 야구가 단번에 무너져내린다. 경기중 그가 던진 공에 동료가 부상을 입게 되면서, 더 이상 완벽한 송구를 할 수 없게 된 것.

그 사고 이후로 어딘가 무심한 인상을 줄 정도로 단순하고 우아했던 헨리의 야구가 홀연히 사라진다. 이제 그의 귓가에 관중의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하고, 공을 낚아채 던지는 손아귀에는 완벽에 대한 두려움이 베어든다. 그는 이전처럼 공에 '반응하는' 대신, 생각을 하고 머뭇거리다 송구를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기를 거듭한다.

야구가 유년의 그에게 약속해준 것 -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하다보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천천히 떨어져 나가고, 매일이 전날과 같지만 약간씩 나아지는 것, 운동장을 조금 더 빨리 달리게 되고, 벤치프레스를 조금 더 들고, 스윙이 약간 더 단순해지고 완벽해지리라는 기대 - 야구를 통해 결국은 완벽함에 닿으리란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소설은 스카우터도 관중도 떠나고 팀에서도 골칫거리로 전락한 헨리가 우아하고 목적에 대한 확실함이 있는 '그의' 야구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송구에 실패하고, 경기를 포기하고, 야유를 받고, 동료들에게 짐이 되고... 그럼에도 야구를 계속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얼까.

소설은 '날아오는 공에 거울처럼 반응하는 기계'를 꿈꿨던 천재 유격수 헨리를,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존재로 바꿔놓고, 마침내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평범한 유격수 한 사람을 되돌려준다. 이제 헨리는 완벽한 유격수가 아니라, 끈질긴 유격수, 자신의 야구를 하는 선수가 된다.

그리고 긴 소설의 마지막에 그려지는 장면.

"손가락이 실밥을 찾아냈다. 그는 팔을 홱 던졌다. 아무것도 이만한 무감각은 불러올 리 없었다. 아무 예감이나 기대의 감각도 없었고, 살아 있는 감각도 없었다. 아무런 무게도, 손끝에는 아무런 가려움이나 지각도 없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희망도 없었다."

"공은 아침 아지랑이를 뚫고 제대로 된 길처럼 보이는 길로 날아갔다. 마지막 공은 헨리가 벗어났닥 생각하는 것보다 더 벗어나는 듯했지만, 중간쯤 갔을 때는 괜찮아 보였다. 4분의 3까지 갔을 때는 더 좋아 보였다. '한 번만.'.... 공은 내야로 곧바로 떨어져 내렸다. 헨리의 몸을 관통하는 느낌은 콤스톡 병원에서 받아먹었던 약보다도 좋았고, 그가 이전까지 야구장에서 느꼈던 그 어떤 기분보다 좋았다. 0.5초 후에 그 기분은 사라졌다. 그는 한 개의 완벽한 송구를 제조해냈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얼마나 어렵사리 되찾은 송구감각인데...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채우는 문장이 겨우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이 참 멋지다. 지금 완벽한 공을 던졌어도, 다음 공이 또 날아올 것이고, 오늘 아무리 멋지게 이겨도 (혹은 아무리 처참하게 지더라도) 내일은 또 내일의 경기가 시작될 것이 아닌가. 이것이 야구다. 경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한 개의 완벽한 송구가 아니라, 단순하고 잔인한 기록 게임을 기어이 이어간다는 것, 야구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밑줄]
"야구는 예술이다. 하지만 뛰어나다고 평가 받으려면 기계가 되어야 한다. 가끔 가다 컨디션이 최고조인 날에 얼마나 아름답게 경기를 펼쳤는지, 끝내주는 플레이를 얼마나 많이 기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수는 화가나 작가가 아니다. 혼자서 일하며 실수 따위는 내던져버리는 수는 쓸 수가 없으며, 걸작을 만들어냈다는 점만으로 인정받지도 않는다. 관건은 어느 기계나 마찬가지로 반복성이었다. 영감의 순간들은 실책이 없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카우트들은 헨리의 초인적인 우아함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2권, 8쪽

 ‎"야구는 엄청나게 애처로운 경기였다. 풋볼, 농구, 하키, 라크로스, 이런 경기는 그냥 아수라장 스포츠였다. 숨도 안 쉬고 내달리고 치고 박고 하는 것으로 다른 선수보다 쓸모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순전한 욕망만으로도 변화의 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야구는 달랐다. 사소한 난투가 아니라 고립된 싸움의 연속이라고 보았다. 타자 대 투수, 야수 대 공, 풋볼을 할때처럼 돌진을 할 수도, 콧김을 푹푹 뿜으며 사람들과 부딪칠 수도 없었다... 야구를 할 때는 서서 기다리며 마음을 고요히 유지하려고 애써야 했다. 자기의 순간이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을 그르쳤다가는 누가 저지른 것인지 모를 사람이 없게 뻔히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실책을 기록으로 남길 뿐만 아니라, 전부 다 보라고 스코어보드에 버젓이 올려 놓을 만큼 잔인한 스포츠가 달리 있던가?" 2권, 12쪽

"세 단계가 있다. 생각이 없는 존재, 생각하는 존재,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존재. 첫째와 셋째 단계를 혼동하지 말라. 생각이 없는 존재가 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생각이 없는 존재로 되돌아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유격수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너무나 열심히 플레이하고 또 플레이해서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는다. 행동하지도 않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행동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격수는 오로지 반응한다." 2권, 89쪽

"전에 도달해본 적이 없는 한 번도 없는 자리로 간 공에 도달하는 것. 그가 막아낼 수 있는 수비 범위의 바로 그 한계 거리를 넓히는 것. 그러고는 한 발짝 더 멀리 가는 것. 이것이 유격수의 꿈이다." 2권, 88쪽

"당신이 한번은 말했지요. 영혼이란 사람이 처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노력과 실수, 학습과 사랑을 통해 만들어 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2권, 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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