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1 14:27

[연재] 빈곤에 대한 이해해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 - 3편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정의하는 빈곤' 개발 학/업 노트

지구촌 빈곤을 해결하겠다는 목소리는 무성한데, 무엇이 '빈곤'인지를 묻는 목소리는 드물다. 총 4회로 나누어 쓰는 빈곤에 대한 이해해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을 위해 짚어보는 '빈곤' 이야기. - 3편.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가 정의하는 빈곤


[관련글] 빈곤에 대한 이해해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 - 1편. "어떤 빈곤인가" 보기.
[관련글] 빈곤에 대한 이해해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 - 2편. "빈곤에 대한 다양한 접근".

빈곤에 대한 다양한 접근

국제개발 NGO의 현장 활동가가 아프리카 지역의 한 마을에 가서 빈곤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현지 조사를 한다고 하자. 이 조사의 목적은 그 마을에서 누가 가난한지 누가 가장 NGO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일단, NGO의 활동가는 집집마다 들려 소득이 얼마고, 하루 몇 끼의 끼니를 먹는지, 아이들은 몇 명이고 학교에 다니는지, 농기구나 가축과 같이 생계 유지를 위한 자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물을 것이다.

이때 알아 낸 내용은 보통 숫자로 기록한다. 하루 소득 1.25달러, 하루 1.5끼의 식사, 취학연령 아동 3명, 자전거 1 대와 닭 10 마리와 같은 식으로 한 가정의 살림살이가 축약되는 식인데 이렇다 보니 가족 내의 사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루 1.5번의 끼니라는 숫자는 한 가정 내에서도 남성들이 하루 두 끼를 먹는 데 비해 여성들이 한 끼만을 먹는다는 사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 남성은 자전거를 이용해 읍내에 나가는 등 친목활동을 하는 반면 여성은 날마다 하루 세 시간이 넘도록 걸으며 나무를 줍고 물을 길어야 하는 사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이 가사부담 때문에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큰데도 말이다.

결국 이 같은 빈곤 실태 조사는 소득이나 자산처럼 빈곤의 한 두 가지 특성에만 주목해서 짧은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만을 파악하는 데 그치기 쉽고, 이런 조사에 근거해서 세워진 빈곤완화 대책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효과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따라서 개발활동을 위해서는 소득 부족으로만 여겨지는 가난만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이고 다면적인 의미의 ‘빈곤’ (Multidimensionality of Poverty)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국 대학들의 국제개발학 전공 대학원 과정 첫 학기 커리큘럼 역시 이를 위해 짜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당장 무엇이라도 할 듯한 열의를 품고 모인 학생들의 기라도 꺾으려는 듯 지루할 만큼 꼼꼼하게 개발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빈곤으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는 빈곤을 줄이고 발전으로 나아가는 개발 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야 할 곳을 모르는 채 목적지에 닿을 수는 없듯 말이다. 그럼, 빈곤의 다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이해가 있겠지만, 유엔을 비롯한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 커뮤니티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 측면을 토대로 빈곤을 이해한다.

우선, 빈곤을 정의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소득’의 부족이다. 이때 빈곤은 세계은행이 정한 빈곤선보다 낮은 소비 수준을 가질 때로 정의한다 (소비의 총합이 곧 소득과 같다고 간주한다). 이 빈곤선은 설문조사를 통해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생필품을 품목별로 수량화하고 이를 (현지의) 시장 물가 수준에 따른 금액으로 환산해서 정하는데, 2008년 기준으로는 일인당 하루 미화 1.25 달러이다. 이런 평가는 정량적이고 통계적이기 때문에 빈곤선 아래에 있는 인구 비율을 헤아려 나라별 혹은 지역별 빈곤 정도를 쉽게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예들 들어, 세계은행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빈곤선 아래에 있는 세계인구는 1981년 19억에서 2005년 14억으로 감소한 반면 지역별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빈곤은 1981년 78%에서 17%까지 줄어들고 절대적인 빈곤 인구의 수도 8백만 명 가까이 줄어든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 인구 비율은 1981년 54%에서 2005년 51%로 미미한 감소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인구 증가로 인해 절대적인 빈곤 인구의 수는 오히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빈곤을 정량적으로, 가시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빈곤 완화를 위한 자원을 분배하는 데 어느 지역이 우선되어야 할지 의사결정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소비 (곧 소득)을 기준으로 한 빈곤은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품목만을 대상으로 해 측정하기 때문에 교육이나 도로 등의 공공 서비스와 사회적 유대감 같은 공공재, 자급자족 농업과 같은 생산 방식을 포함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족한 생활을 하며 행복을 누리는 전통적 공동체가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빈곤 지역으로 불려 지고 개발 사업의 대상지역이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오래된 미래>에서 회고한 것처럼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외부 사람들에 의해 특정 지역이 빈곤 지역으로 명명되는 것이다. 호지는 1975년 라다크를 처음 찾아갔을 때만 해도 그곳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이란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젊은 사람들에게 가난한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우리 마을에는 가난한 집이 없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는 라다크 사람들이 스스로가 외국인 관광객들을 향해 우리는 빈곤하니 도움을 달라는 호소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비(소득)을 기준으로 한 빈곤은 ‘일인당’ 소득에만 관심을 한정하며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를 테면, 다섯 명으로 구성된 한 가정이 하루 총 미화 7달러의 소득을 올린다면 이는 빈곤선인 6달러(일인당 1.25$ 곱하기 5)보다 많은 것이지만, 이것이 가족 내에서의 자원의 분배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들 가정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한참 일을 하는 성인 남성들에게 보다 많은 끼니가 배분되고 노인이나 성인 여성은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득 기준 빈곤에서는 이런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가정에서 한 사회로 시야를 넓혔을 때도 마찬가지다.

소득 기준 빈곤은 한 사회 내에서의 분배적 정의를 다루지 않은 체 경제가 성장하면 빈곤층의 소득이 반드시 높아진다고 전제한다. 이런 가정은 소득을 높이는 것을 빈곤의 무력감과 박탈감을 없애는 유일하고도 특권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 지게 하며, 경제성장의 열매를 빈곤층과 나누도록 하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소홀하 생각하게 한다.

한편, 빈곤을 소득의 부족만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에서 파악하려는 접근도 있다. 이 접근에서는 한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삶의 조건 (Basic Needs)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 및 그로 인해 생기는 무력감과 박탈감을 빈곤으로 본다. 이 최소한의 조건은 공중보건, 교육, 생활 식수, 위생시설 등의 공공 서비스나 안정된 주거환경과 일자리 등을 포함한다. 

나아가 인도 출신으로 불평등의 문제를 연구하여 198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아마티아 센 (Amartya Sen)은 ‘자유(freedom)’와 ‘역량(capabilities)’이란 개념을 들어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의미하는 기본권의 범위를 물리적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 권리로까지 확장했다. 센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최소한의 삶의 조건들을 갖추는 데는 분명 저소득이 영향을 까치지만 다른 요인들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일단 이들 서비스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는 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능력인 ‘역량’이 필요하다.

던컨 그린이 <빈곤에서 권력으로>에서 소개한 예는 이를 잘 보여 준다. 한 여자 아이가 학교에 갈 권리를 가졌다고 해도 물을 길어야 하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집안일에 얽매여 있거나, 학교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또 여자 아이들에게 교육은 소용없다는 사회적 편견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 권리는 제대로 행사되기 어렵다. 즉, 권리를 행사하는 능력인 역량이 가난, 사회적 편견, 교육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 등으로 훼손된 것이다. 센은 이처럼 한 사람의 역량이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 상태 및 그로 인한 박탈감과 무력감을 빈곤으로 보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한 사람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을 발전 (development as freedom)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기본적 요구 (Basic Needs) 및 역량 (Capabilities)의 실현 여부를 빈곤의 척도로 보는 접근은 소비 수준만을 근거로 하는 접근에 비해서는 보다 총체적이지만, 여전히 빈곤을 낳고 고착화하는 사회적 요소들보다는 그 희생자인 개인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학교에 가서 적절한 교육을 받고 이를 토대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데에는 실제로 인종, 민족, 젠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 역할), 사회계급 (카스트 등) 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역량의 부족만을 강조하다 보면 이 같은 집단적 요인을 경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을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에서 비롯된 박탈 (deprivation)로 보는 접근은 앞에서 언급한 사회, 문화, 정치, 제도적 요인들로 인해 특정 집단의 권리가 박탈되고 이 때문에 가난이 대물림 되며 집단 사이의 불평등이 강화되는 과정 자체에 중점을 둔다. 소득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빈곤의 부자유와 무력감을 없앨 수 없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종, 민족, 젠더 등을 근거로 한 사회적 배제를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1990년 대 이후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생활수준을 개선하고 있지만 소수 민족 갈등이 얽힌 신장 지구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빈곤과 박탈감은 더욱 커진 현상이나, 경세성장 과정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중산층에 진입한 인도의 가정들에서 오히려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더욱 심화되는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이전에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묵과했던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집안 형편이 나아지자 이제 힌두교 율법을 들어 오히려 금지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인데, 빈곤을 소득이니 기본 요구(basic needs)이란 관점에서만 보면 이와 같은 문제들은 보이지 않고, 따라서 이에 대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빈곤을 특정 집단이 한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과정으로 파악하면 빈민(excluded)의 궁핍한 상황, 즉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데서 시야를 넓혀, 누가 (excluders) 또는 어떤 제도와 관습이 특정한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배제시키고 이들을 빈곤의 덫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옭아 메는지에 주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접근은 한 사회에서 경제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유발되는 사회적 갈등과 폭력에 대한 책임을 빈민에게만 전가하려는 경향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도 최근 들어 널리 받아들여 지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은 빈민뿐 아니라 중산층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가 정의하는 빈곤’

앞서 살펴본 빈곤에 대한 이해가 갖는 공통점을 살펴보자. 소득의 부족이든 역량의 훼손이든 사회적 배제에 따른 박탈이든 빈곤에 대한 이 모든 정의는 ‘외부인들’ 혹은 ‘개발전문가’들에 의해 개념화되고 지표로 만들어져서 개발도상국에서 시행하는 국제개발 원조 프로그램에서 사용된다.

소득 빈곤을 가늠하는 기준인 빈곤선 (poverty line)을 어떻게 설정할지 (예. 어떤 생필품을 필수 항목에 넣을지), 역량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삶의 조건 (Basic Needs)을 무엇으로 볼지 등이 현지의 주민들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의 손에서 결정된다. 그로부터 하루 1.25 달러의 빈곤선이나, 문해율, 예상수명과 같은 지표(indicator)가 만들어지고 이를 기준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발견’ 된다. 유네스코(UNESCO)라면 문맹률이 일정 기준보다 높은 지역을, 세계보건기구(WHO)라면 인구 대비 보건인력의 숫자가 기준보다 낮거나 예상 수명이 짧은 곳을 그리고 식량농업기구(FAO)라면 일인당 섭취 칼로리가 기준보다 낮은 곳을 국제원조 개발 사업의 대상 지역으로, 그 지역의 주민을 사업 대상으로 정하게 되는 식이다.

문제는 이처럼 지표화 된 빈곤 평가들이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난과 소외의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 가에 있다. 빈곤에 대한 참여형 접근 (participatory approach of poverty)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빈곤이 무엇인지는 지역 사람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바에 따라 정해져야 하며, 빈곤 평가 역시 현지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하며, 외부인들은 청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의 지역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개발이란 철학에서 시작되어 영국 IDS (Institute of Development Studies)의 로버트 챔버스 (Robert Chambers) 교수 팀에 의해 체계를 갖춘 빈곤 평가 및 정책 툴로 고안되고 정착되었다. 챔버스 1983년에 출간한 <농촌지역 개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Rural Development: Putting the Last First]에서 개발 활동을 펴는 국제개발 전문가나 활동가들을 ‘외부인’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지역 주민들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시작한다.

당시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의 확산효과가 농촌 지역까지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의 실망스런 결과에 따른 반향으로 1970년대부터 제기된 기본적 요구 (Basic Needs) 충족 접근이 국제개발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던 때였다. 이 접근은 도시로부터의 성장의 효과가 자연스럽게 확산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농촌 산간 지역에 직접 개입해 교육, 보건의료, 생활식수 등의 기본적 공공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챔버스는 농촌 지역의 실질적 생활수준 개선을 위해 우물을 파고 학교와 보건소를 지어도 정작 유지관리가 안 되는 현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낳은 원인으로 관광지를 구경하는 여행객처럼 단기간에 사업 지역을 둘러보는 ‘개발관광 (development tourism)’을 하고는 거기서 얻은 빈곤에 대한 단편적 지식에 근거해 지역 개발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외부인들의 태도를 지적한다. 이런 식의 개발은 지식 권력을 가진 외부인들에 의해 주도되기 마련이며 지역 주민들의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챔버스는 개발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과 우선순위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이 과정에서 누구의 지식 권력이 영향을 미치는지 숙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참여형 빈곤 평가 (Participatory Rural Appraisal)를 고안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 평가는 외부인들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빈곤(poverty)’이라는 용어 자체를 버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그들이 현재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나은 삶을 누리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Development as good change - from ill-being to well-being’)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이 평가에서 지역 주민들은 외부인이 준비한 설문지에 답하는 대신 진행자나 참여자가 되어 주도권 갖고 대화를 이끌어 가며 그들의 필요에 따라 개발 우선순위를 만들어 간다.

이때 외부인인 전문가의 역할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흙, 돌, 곡물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물을 사용한 의사표시 방법을 고안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발언권이 약한 여성, 소수 민족 구성원 등이 평등하게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세심하게 고안하는 정도이며 주로 청자에 머문다.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된다.
이 방법은 처음에는 지역 단위의 소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고안되었지만, 1990년 초반부터는 아프리카 지역의 지방 및 중앙 정부의 빈곤 감소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도구로 채택되었다.

이는 1980대 초반부터 남반구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 (Structure Adjustment Programmes) 정책의 여파였다. 1970년대 후반의 석유 파동과 북반구의 경기 침체는 남반구에도 충격을 가했다. 북반구 은행들은 이자율을 높이고 부채 상환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특히 세계은행은 남반구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강제했다. 부채경감 및 해외원조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이를 위해서는 남반구 국가들이 국가 예산 축소, 민영화,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노동규제 완화 등의 제도적 개혁을 먼저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이르자 이와 같은 구조조정 정책이 남반구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속속 들어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정부들의 공공 예산 축소로 사회적 안정만이 급격하게 축소됐고 빈곤층이 급증했다. 특히, 아프리카 인구의 70%가 소농임을 감안하면 농업 부문의 정부 개입 축소는 빈곤층을 늘리는 직격탄이 됐다. 구조조정으로 곡물 수매의 최저가를 보장하는 정책이나 비료 보조금이 철폐되고 농업 부분의 무역자유화가 이뤄지면서 선진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값싼 곡물들이 수입되어 들어오자 아프리카의 농촌은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기아를 겪는 지역마저 속출했다.
 
영국의 국제개발 NGO 옥스팜 (Oxfam)에 따르면 1981년과 2001년 사이에 하루 1달러 미만 생활비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의 숫자가 두 배로 증가한 3억 1300만 명이 되었다. 이는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6%에 달하는 숫자로, 같은 기간 중 인구 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다 (Oxfam, 2006; 3). 

결국 1990년에 후반에 이르면 구조조정 정책을 견인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도 문제의 심각함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원조를 받는 국가의 정부가 세계은행의 도움을 받아 향후 개발 계획을 담은 국가빈곤감소전략문서 (Poverty Reduction Strategy Paper, PRSP)를 작성하도록 한다. PRSP의 내용이 세계은행을 비롯한 원조 공영국의 입김에 따라 결정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국가 자체를 개발의 장애물로 간주했던 구조조정 정책에 비하면 이는 빈곤감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외면적으로나마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참여형 빈곤 평가는 PRSP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요 평가 도구로 채택되어 널리 쓰였다. GDP, 하루 생활비, 문해율, 예상수명, 5세 미만 영아 사망률 같은 기존의 빈곤 평가 지표에 더해 참여형 빈곤 평가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문서에 담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참여형 빈곤 평가를 통해 6만 명이 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세계은행의 보고서 (2000/2001)의 출간은 국제개발 활동의 변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이 보고서의 출간이 소득의 부족이나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의 제한만이 아니라 안전, 자존감, 공동체에의 참여, 미래에 대한 기대 등의 가치가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삶(well-being)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함을 전 세계에 확신시켰기 때문이다. [다음회에 계속]


덧글

  • 우서규 2012/06/21 15:41 # 삭제 답글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페북 공유할게요...
  • cklist 2012/06/21 15:55 #

    댓글 고맙습니다.. 페북에서 놀다보니 여기서도 likes 버튼을 찾고 있어요 ㅋㅋ
  • Dawn 2012/06/23 13:51 # 삭제 답글

    나의 필드 생활의 키워드. 빈곤에 대한 정의 였음. 특히 오만하게도 세상 모든 나라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서구의 그것과 유사하고 유사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시작하는 빈곤의 정의, 지표들, 개념. 교육과 보건영양 지표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이 지표를 만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사업의 폭력성. 빈곤 이란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는 삶에 들어가 열댓개의 서구식 지표를 들이대며 빈곤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경제적 사회적 카테고리로 분리시키는 것. 수천년동안 같은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잘 살아낸 사람들에게 우리처럼 80살까지 살 수 있는데 무지해서 40-50까지 밖에 살지 못한다고.. 다른 걸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에 대한 의심이 결여된 국제개발판. 이 오만과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각성이 없이 블라 블라 생산되는 수많은 정보들에 숨이 막히는 현실.
  • cklist 2012/06/23 14:01 #

    이 시간에 여기서 모하십니까 ㅋㅋㅋㅋ '개발사업의 폭력성' 이란 말이 확 박히네. 사람들은 이걸 개발사업희 효과성과 혼동하지 않아요?
  • cklist 2012/06/23 14:03 #

    블라 블라 생산되는 수많은 정보들... 그걸로 밥그릇 싸움하는 거 보고 있으면 속 뒤집혀. 아 진짜, 고상하게 쓰고 싶은데 '밥그릇 싸움' 외에는 정말 다른 표현을 모르겠다..
  • Dawn 2012/06/23 15:34 # 삭제 답글

    황금같은 주말 시간에 황금같은 정보를 흡수 중이지. ㅋㅋ 개발 공부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난 개발이 폭력이라는 것. 폭력일 수 있다는 것. 폭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한다는 것을 단 하루도 의심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폭력을 최소화 하고, 최대한 긍정적인 기제로 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개발사업의 효과성의 최대화 하는 것은 humanitarian worker들이 하는 일이고, 개발사업의 폭력성을 최소화 하는 것이 humanitarian activist들이 하는 일이지. 아직은 어떻게 fight back 해야할지 고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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