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5 07:09

새천년개발목표 (MDGs) 이후의 개발 프레임워크,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개발 학/업 노트

UN 새천년개발목표가 2015년 종료됨에 따라 MDGs 이후의 국제개발 프레임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 시민사회에서는 이제 막 이 논의를 시작했는데, 그 첫 단추로 국제개발 애드보커시 단체들이 모여 ‘Beyond 2015 Development Agenda’ 사전 토론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 내가 일하는 국제개발 INGO의 post-2015 워킹 그룹의 활동을 소개할 기회를 얻어서 참여했다. 발제와 토론에서 오간 이야기를 들으며 배운 것들.

Post 2015인가, Beyond 2015인가.
정부나 유엔 기구에서는 MDGs 이후의 국제개발 담론을 통틀어 ‘Post-2015’라고 칭하고, 시민사회에서는 'Beyond 2015'라고 일컫는다. 어감의 차이가 있는데, Post-2015는 MDGs 가 종료되는 2015년 이후의 새로운 국제개발 프레임워크와 이에 대한 담론을 칭하는 가치중립적 표현인 반면, Beyond 2015라고 하면 무언가를 ‘넘어서서’ ‘그 이상을’ 말하겠다는 함의가 있다.

그 ‘무언가’란 무얼까. 첫째로, 2000년에 유엔 밀레니엄 선언이 선포되고 MDGs가 나올 때 시민사회가 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과거 경험에 힌트가 있다. MDGs는 유엔개발기구가 중심이 되어 구상한 초안에 세계 정상들이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때문에 MDGs 론칭 초기에는 몇몇 시민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밀실’에서 구상된 MDGs 자체를 거부하자는 목소리를 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 시민사회가 ‘Beyond 2015’ 이란 통칭을 택한 것은 MDGs처럼 UN 기구가 일방적으로 생산하는 개발 목표를 받아 들이는 수준을 넘어서, 이번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담긴 2015년 이후의 개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둘째, Beyond 2015라는 통칭에는 개발 혹은 발전 (development)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자는 의미가 담겼다. MDGs를 통해 이제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development는 빈곤 완화와 인간 개발의 다른 이름이었다. 소득을 늘리고, 교육과 보건의료 서비스에의 접근성을 높여서 누구나 인간으로써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활동이 개발이었고, 아프리카의 빈곤퇴치를 위한 해외원조가 그 수단으로 여겨졌다.

반면, Beyond 2015는 이러한 전통적인 개발 담론의 범위를 넘어 선다. 이제 개발은 소득의 증가나 기초적 공공 서비스의 정량적 확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사회정의와 평등, 인권이 보장되고 확대되는 과정이자, 이를 통해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는 전환(transformation)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때 개발은 자선이나 기부, 원조에 대한 이야기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개발은 공정한 무역, 군축과 평화, 기후변호, 에너지와 식량, 고용 등의 지구촌 공공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의 관심사이자, 특히 선진국 시민들의 책임 있는 웰빙 (responsible well-being)을 촉구하는 윤리적 성격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사회가 말하는 Beyond 2015는 곧 Beyond (conventional) development 이다.


한국의 국제개발 NGO는 Beyond 2015 담론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토론회를 주최한 곳이 지구촌 빈곤퇴치네트워크, KoFID 국제개발협력시만사회포럼,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와 같은 기관이고, 나를 제외하고 발제를 한 다른 두 분 모두 애드보커시 전문기관에서 활동하신다. 그러니 발제를 준비하면서도 국제개발 INGO에서 일하는 나를 왜 불러주셨을지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었다.

한편으로는 유럽 멤버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애드보커시 부서를 갖고 있는 INGO에서는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국 밖’ 이야기가 궁금하셨을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MDGs 몇 항 달성’ 이라는 내용들 담아 KOICA에 제출하는 사업계획서를 숱하게 쓰고 그에 맞춰 현장 사업을 해온 ‘한국 속’ 국제개발 기관의 입장을 듣고 싶으셨을 것이다.

앞에 대해서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워킹 그룹의 활동을 요약했다.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워킹 그룹이 이 논의를 시작하면서 한 첫 번째 작업이 개발도상국의 주민,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MDGs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현지의 ‘목소리’를 문서화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애드보커시라고 하면 정부 부처 담당자를 만나고, 서명운동을 조직하는 일인 전부인 것 같지만, 그 전에 무엇보다 먼저 ‘현장’과 ‘사람들’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건너 뛰고 정치적으로 세련되고 잘 짜인 말부터 꾸리기 시작하면 이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옹호’가 아니라 내 생각을 늘어 놓는 ‘자기 주장’이 되고 만다. 여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뒤에 대해서는 ‘이런 거 궁금하지 않으세요?” 하고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지난 10년간 개발도상국에서 현장 사업을 해온 한국의 국제개발 NGO들에게 MDGs가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묻는 것이 한국의 시민사회가 펼쳐갈 Beyond 2015 담론의 첫 단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누구에게 MDGs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쓰는 사업계획서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레퍼런스였을 것이고, 누구에게 MDGs는 보다 용이한 펀드레이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툴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 MDGs는 현장 사업의 초점을 가난한 사람의 소득 증대 (인권이 아니라)에만 묶어 두게 하거나, 특정 시간 안에 학교를 더 빨리 더 많이 짖는 일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족쇄였을지도 모른다.

MDGs가 만들어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아직 현장 사업 경험이 그리 많지 않던 때이니 할 말이 없었겠지만, MDGs 달성을 위한 사업을 10년이나 해 온 지금은 하고 싶은 말도 있고, 꼭 해야 할 말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국제개발 NGO가 현장에서, 사무실에서 꾹꾹 눌러두기 만한 그간의 경험을 우리의 말로, 우리의 글로 정리하고 나누는 작업을 하는 것이 한국 시민사회의 Beyond 2015 논의에 현장 사업을 해온 국제개발 NGO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MDGs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지 않고서는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없다.

정치적 리더십의 각축전이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냐
Post 2015이든 Beyond 2015이든, 어떻게 부르든, 앞으로 펼쳐질 MDGs 이후의 국제개발 의제에 대한 담론은 국제적으로든 국내적으로든 개발에 대한 입장이 상이하게 다른 각 나라 정부와 UN기구, 시민사회, 나아가서는 민간 섹터가 국제개발 의제에 대한 리더십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각축전이 될 것이다. 경제위기와 고유가, 식량위기 등으로 개발 재원과 자원이 한정된 시기이기 때문에 이 각축전은 더욱 격양될 수밖에 없다.

한 편에서는 성장Growth 을 그 핵심에 넣고 싶어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분배의 정의가 함축된 평등 Equity을, 혹은 인권이나 인간 개발을 핵심으로 삼고 싶어한다. 한편에서는 개발도상국에만 적용대상이 되는 프레임워크를 선호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원 월드 어프로치를 원한다. 그런가 하면 한 쪽에는 현재의 MDGs를 연장하거나,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같은 내용을 추가로 강조하는 MDGs 플러스 프레임을 원하고, 다른 쪽에서는 Millennium Consumption Goals과 같이 선진국 시민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강조한 프레임워크를 원한다. 이를 두고 각 나라 정부, 유엔 기관, 북반구와 남반구의 시민사회 단체가 줄다리기를 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 담론의 정치경제적 지형을 얼마나 잘 읽어내고, 인권, 사회정의, 평등, 지속 가능한 개발과 같은 가치를 위해 얼마나 스마트하게 연대할 것인가가, 어떻게 리더십을 가질 것인지는 물론 중요하다. 이 각축전에서 지켜내야, 혹은 얻어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각축전의 양상을 분석하다가 혹시라도 놓치는 것이 있지는 않을지, 경계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토론자 가운데 한 분께서는 새 개발 프레임워크를 둘러싼 헤게모니 각축전을 분석하는 데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우려하며, MDGs로 상징되는 ‘개입’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를 먼저 돌아보자는 제언을 주셨다. 이는 각각의 지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한국의 국제개발 NGO에게 이는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 나는 현장사업을 하는 많은 NGO들은지난 10년간 MDGs =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 인구의 감소 = 개발 혹은 발전, 이라는 내러티브를 가장 앞서서 만들어 온 주체들이기도 하다는 말로 이 코멘트에 답했다. 이 도식은 빈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보다 많은 기부금을 모으고 보다 많은 사업을 펼치는 데는 유용했지만, 그 부작용도 크다.

이 도식이 빈곤을 소득의 빈곤만으로, 불평등을 경제적 불평등만으로 보게끔 우리의 시야를 좁혔기 때문이다. 본래 빈곤은 다면적이다 (multidimensionality of poverty). 소득의 부족도, 참여의 부족도, 인종, 민족, 계급, 젠더 등에 따른 사회적 배제도, 자유의 부족도 모두 빈곤이며, 이들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 국제개발 NGOs들이 MDGs를 하루 1.25 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의 감소로 도식화면서, 사회정의, 평등, 참여, 인권 등의 가치를 네러티브에서 지워내고, 이런 가치들을 어딘지 뜬 구름 잡는 것만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국제개발 NGOs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집단보다 적극적이던 것은 맞다. 그 결과가 지금의 Beyond 2015 논의에 국제개발 NGO가 느끼는 거리감일지 모른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개념들 – 평등, 인권, 사회정의 등-이 정작 국제개발 NGO에서는 낯설다.

이렇게 만든 단순성에 힘입어 보다 많은 사업을 했다고 하면 이는 용인될 수 있는 트레이드 오프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국의 사무실에서, 개발도상국의 마을에서 개발 사업에 관여해온 활동가들 각자가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만든 ‘빈곤은 소득의 부족’이라는 도식이 우리의 사업 내용을 규정하고 한정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면, 그래서 단기간에 효과가 나지 않는 역량강화 사업을 뒷전에 뒤게 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트레이트 오프의 결과는 뼈아프다.

이처럼 Post 2015 담론은 MDGs 이후의 새로운 개발 프레임워크를 정하는 글로벌 차원의 각축전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는 시민사회가 내세운 것처럼 인권과 사회정의, 평등이 핵심이 되는, 이제까지의 개발을 넘어서는 개발 (Beyond 2015)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낼 기회이면서, 특히 한국의 국제개발 NGOs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성찰의 기회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여러 분들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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