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7 13:46

[연재] 빈곤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 - 2편. 세 여성 이야기 개발 학/업 노트

지구촌 빈곤을 해결하겠다는 목소리는 무성한데, 무엇이 '빈곤'인지를 묻는 목소리는 드물다. 빈곤에 대한 이해해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을 위해 짚어보는 '빈곤' 이야기. - 2편. 세 여성 이야기.


[관련글]빈곤에 대한 이해해서 출발하는 국제개발협력 - 1편. "어떤 빈곤인가" 보기.

세 여성 이야기

# 인도 케랄라주의 한 마을에 사는 파티마는 마흔 두 살 여성이다. 불가촉 천민이며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자그마한 땅 덩이에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인근 도시로 나가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남편은 기침을 심하게 하며 점차 몸이 마르더니 두 해 전 세상을 떠났다. 병원이 없는 마을이라, 급한 대로 좋다고 하는 민간요법을 다 써봤지만 남편은 병명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러니 사이 약값이며 생활비로 동네 이웃과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을 지고, 농기구며 생계수단인 자전거도 내다 팔았다.

다행히 네 명의 아이들 가운데 스무 살인 첫째가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활비를 댄다. 이마저 갈수록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한 달에 열흘 남짓 일을 하고, 연간 2,500 루피 우리 돈 10만원 남짓한 임금을 받는 정도다. 혼자 농사를 짓기 힘든 파티마는 마이크로 크레팃 기관에서 돈을 빌려 송아지를 사서 우유를 시장에 내다 팔 려 했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렇다 할 낙농 지식이 없는데다, 카스트 계급인데다 글을 읽을 줄도 몰라 지역의 낙동 협동조합에도 참여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지역에 전염병이 돌아 송아지마저 폐사하자 결국 대출금을 갚지도 못한 체 빚만 늘렸다. 이제는 이렇다 할 담보가 없는 데다 이미 진 빚이 많아 어느 대출그룹에서도 끼워주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땅덩이에 농사를 지어 보지만 곡물을 내다 팔아 수입을 얻기는커녕 끼니를 잇기도 벅차다. 제대로 된 농구가 없는데다 갈수록 땅이 가무는 탓에 곡물이 말라 죽는 일도 허다하다.

정부에서 매달 지원하는 연금을 받고 싶지만 집이 있고 일을 하는 아들도 있어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아이 셋을 중등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쉽지는 않다. 학비가 무료라고 해도 교복이며, 육성회비, 시험 응시료 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네팔에서 나고 자란 싼티는 열 다섯 살이지만 벌써 한 아이의 엄마다. 14살에 시집을 와서 아이를 낳았다. 초경 전에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관습이 있는 네팔에서는 10명 중 6명이 조혼을 할 만큼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싼티는 어느 날 심하게 아프기 시작한 아버지의 강요로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입을 덜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싼티의 남편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인도로 떠났다. 네팔의 시골 마을에는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던 싼티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키우며 이제 아이가 자라서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꾼다.

# 스물 다섯 살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며 네팔에 살고 있는 티라도 조혼을 한 경우다. 열일곱 살에 스무 살 차이가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 가난 때문에 이루어진 강제조혼이었다. 다행히 결혼 초기에 남편은 건축현장 감독으로 일하며 제법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남편이 폐결핵에 걸리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거동이 불편해진 남편은 공사장을 전전하다 지금은 남의 밭에서 소작농으로 일한다. 티라도 나와 농사일을 거든다. 남편의 치료비를 대느라 생긴 빚이 있는 데다 두 아이가 자신처럼 일찍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티라는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행여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날까 늘 걱정이다. 여성이 소작농으로 종일 일한다고 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다 학교를 그만둔 탓에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두렵다. 마을에서는 아침에 과부를 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과부가 고기를 먹는 것은 전남편의 살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다. 티라는 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활 전반에 걸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일임을 익히 보아왔고, 그런 낙인이 자신에게도 찍힐까 늘 불안하고 두렵다.

인도에 사는 파티마, 그리고 네팔에 사는 싼티와 티라의 이야기는 빈곤이 단순히 소득의 부족만이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 속에서만 보더라도 보건의료 시설과 일자리의 부족,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것, 농업과 낙농업에 대한 지식 부족,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 생산성의 저하, 금융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것, 조혼이라는 관습, 카스트에 따른 계급적 차별, 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제 등이 이들을 빈곤에 빠뜨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빈곤층이 끼니를 거른다고 해서 식량을 나눠 주거나 어떤 지역의 학교 출석률이 낮다고 해서 교실을 늘리는 일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이들의 삶을 옭아 메는 조혼이라는 관습의 폐해를 드러내야 하며, 이 여성들이 나라 (네팔)에서 제정한 여성차별금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이들과 지역 사회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 또 보건의료 서비스를 농촌 산간 지역에까지 보급해서 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가족 전체가 빚더미에 오르고 마는 상황을 바꿔야 하고, 일자리를 늘려 지속적인 소득 증대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식량이나 가축을 지원하거나 마이크로 크레딧 대출을 늘리기만 해서는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

이처럼 빈곤 완화는 소득의 증대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역량이 커지고 한 지역이 바로 서며,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 줄어들고 약자로서의 권리가 보호되는 총체적 과정이다.

당장은 가난하고 위기에 취약한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끼니를 챙기는 데서 시작하지만 이는 사회적 보장과 참여의 확대로 나아간다. 이런 과정을 발전(development)으로, 이를 위한 활동을 개발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이브더칠드런이나 월드비젼, 옥스팜 같은 단체들을 국제개발 NGO라고 부르는 것도 이들 기관이 긴급 구호뿐만 아니라 보다 지속적인 개발활동을 통해 발전의 증대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빈곤에 대한 다양한 접근

국제개발 NGO의 현장 활동가가 아프리카 지역의 한 마을에 가서 빈곤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실태 조사를 한다고 하자. 이 조사의 목적은 그 마을에서 누가 가난한지 누가 NGO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일단, NGO의 활동가는 집집마다 들려 소득이 얼마고, 하루 몇 끼의 끼니를 먹는지, 아이들은 몇 명이고 학교에 다니는지, 농기구나 가축과 같이 생계 유지를 위한 자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물을 것이다. 이때 알아 낸 내용은 보통 숫자로 기록한다. 하루 소득 1.25달러, 하루 1.5끼의 식사, 취학연령 아동 3명, 자전거 1 대와 닭 10 마리와 같은 식으로 한 가정의 살림살이가 축약되는 식인데 이렇다 보니 가족 내의 사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루 1.5번의 끼니라는 숫자는 한 가정 내에서도 남성들이 하루 두 끼를 먹는 데 비해 여성들이 한 끼만을 먹는다는 사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 남성은 자전거를 이용해 읍내에 나가는 등 친목활동을 하는 반면 여성은 날마다 하루 세 시간이 넘도록 걸으며 나무를 줍고 물을 길어야 하는 사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이 가사부담 때문에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큰데도 말이다.

결국 이 같은 빈곤 실태 조사는 소득이나 자산처럼 빈곤의 한 두 가지 특성에만 주목해서 짧은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만을 파악하는 데 그치기 쉽고, 이런 조사에 근거해서 세워진 빈곤완화 대책은 개발과 발전이라는 효과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따라서 개발활동을 위해서는 소득 부족으로만 여겨지는 가난만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이고 다면적인 의미의 ‘빈곤’ (Multidimensionality of Poverty)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국 대학들의 국제개발학 전공 대학원 과정 첫 학기 커리큘럼 역시 이를 위해 짜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당장 무엇이라도 할 듯한 열의를 품고 모인 학생들의 기라도 꺾으려는 듯 지루할 만큼 꼼꼼하게 개발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빈곤으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는 빈곤을 줄이고 발전으로 나아가는 개발 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야 할 곳을 모르는 채 목적지에 닿을 수는 없듯 말이다.

그럼, 빈곤의 다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마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이해가 있겠지만, 유엔을 비롯한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 커뮤니티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 측면을 토대로 빈곤을 이해한다. [다음 회에서 계속]

* 위의 세 여성 이야기는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최민석/조화로운삶)에 소개된 내용을 축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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