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팜 보고서 ‘Blind Optimism'는 민간 부분(여기서는 '시장을 통한' 의료 서비스의 공급을 뜻한다)이 이미 아프리카 의료 서비스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민간 영역의 확대가 불가피한 흐름이며, 민간의 참여가 의료 서비스 비용을 낮춤으로 결과적으로 빈곤층에 친화적이라는 세계은행의 주장에 대해 (1)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복제약을 파는 노점상 등이 세계은행이 말하는 ’민간‘ 영역의 40% 이상(말라위의 경우는 70%까지)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며 복제 말라리아 약 등이 유통되면서 오히려 약물 저항성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2) 민간 의료 서비스는 일차적으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중산층에 친화적이기 때문에 민간 영역의 참여 확대가 곧바로 빈곤층의 의료 서비스 접근을 늘리는 데로 이어지지 않는다 (3) 민간 영역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예방보다는 치료에 주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빈곤층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한다 (4) 민간 영역이 비용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민간 영역에 지원되는 막대한 공적 보조금 및 세금 혜택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결과다 라는 등의 논리로 반박한다.

세계은행과 옥스팜 각각의 주장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검토가 중요하고, 옥스팜 보고서에 대한 세계은행의 반박이 이에 치중하고 있지만, 사실 이 논쟁은 개발도상국에 빈곤층(주로 농촌 지역)에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를 어떻게 공급할지를 두고 1970년대부터 진행되어온 보다 깊은 논의들에 뿌리를 둔다. ‘시장이냐 공공이냐’의 논쟁은 결국 ‘누갗 ‘어떻게’ 서비스를 공급할 것이며, 사회적 자원의 배분에 있어 ‘누구를’ 가장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은 경제발전의 효과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확산되어 궁극적으로 사회 전반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근대화이론의 약속이 깨어진 시기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눈에 띄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문맹률, 영양실조, 영유아 사망률 등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국제개발 기관들이 내놓은 처방 가운데 하나가 ‘베이직 니즈 (Basic Needs Approach)' 접근이다.
1976년을 기점으로 세계은행 WorldBank, 유엔개발기구 UNDP, 유엔식량기구 FAO, 세계보건기구 WHO 등이 경제성장을 통한 파급 효과를 기대하기보다 농촌 지역의 빈곤 완화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고, 이런 목소리는 국제노동기구 ILO가 개최한 World Employment Summit(1976)을 통해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잠식하지 않기 위해서 농촌 지역의 빈곤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식량, 주거, 식수, 보건의료, 교육 등의 기초적 서비스(Basic Needs)를 우선적으로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모아졌다. 베이직 니즈 접근은 그 방법으로 공공 지출의 확대와 더불어 지역 주민의 참여를 강조했다. 한정된 공공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이는 지역 주민들이 의사 결정권을 갖고 지역 개발에 참여할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는 베이직 니즈 접근을 기초로 한 농촌 개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있어 일종의 ‘입구’ 또는 ‘지렛대’ 같은 역할을 했다. 공중보건의 시작은 깨끗한 물, 안전한 주거 시설, 충분한 식량을 보급하는 데 있었고, 이는 농촌 개발을 위한 디딤돌이기도 했다.이제 기초 의료 서비스는 ‘(외부로부터)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직접 ‘생산하는’ 것이 되었고, 의료의 개념보다 보다 넓은 틀에서 이해되었다. 건강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문제이며, 의료 분야에 대한 독립된 접근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목표였고, 이를 위해 여러 분야를 포괄하는 농촌 개발 전략이 필요했다.지금은 이런 이야기들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이는 커다란 전환이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식민지에서 독립한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지난 시대의 보건의료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공보건 예산의 대부분이 도시, 대학병원, 엘리트 중심 의료에 지원되었고, 농촌 지역은 여전히 외국 선교단체에 의존했다. 동시에 WHO를 비롯한 국제 기관들은 사망률을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특정 질병(말라리아, 결핵, 천연두 등)을 퇴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하지만 실패는 명백했다. 이들 기관들이 말라리아나 천연두 퇴치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사람들은 다른 질병으로 굶주림으로 혹은 적절치 못한 위생에 따른 감염으로 여전히 생명을 잃었고,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의 의료 분야에 지출됐음에도 그 성과는 미미했다. 이런 실패들이 건강은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빈곤의 완화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냉전이라는 시대 상황도 한 몫을 했다. 미국의 개발 기관과 WHO가 지원하는 질병중심의 접근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던 반면, 지역에서 기초 의료 인력을 양성해 예방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한 중국의 ‘barefoot doctor' 정책은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그런 의미에서 WHO와 UNICEF의 주도로 채결된 알마-알타 선언(1978)을 통해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을 공식화하고,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 정책을 택한 것은 일종의 ‘사건’ 이었다.
농촌 빈곤 완화를 통해 건강과 보건 문제에 접근하자는 이 선언의 채택은 도시-엘리트 중심의 의료에서 지역 공동체 중심 보건으로의 방향 전환을 뜻했다.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을 정책으로 택한 정부들은 지역 공동체 기반의 예방 중심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중심에 두고, 보건의료 예산을 재편성했다.도시의 대형 병원에서 지역의 공중보건소로, 식수와 위생시설을 짓고 식량을 확보하는 데로 예산이 옮겨졌다.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은 실행에 있어 값비싼 의료 기기를 대신하는 적정기술의 보급 및 지역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의 주도로 공중보건 서비스를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지역마다 보건소 운영위원회를 세웠고, 의사 결정 과정에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했다.전문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일정 기간 이상의 교육을 받으면 마을을 돌보는 기초 의료 인력(Village Health Workers)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여기에 보태 민간 요법도 지식으로 인정되어 공중보건 체계 속에서 일정한 몫을 했다. 공중보건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은 곧 여러 측면에서 거센 비판에 직면한다. 가장 큰 목소리는 아프리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케이스 스터디들로부터 나왔는데, 이 접근이 그 의도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지역 주민들의 노동 부담을 늘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었다.
1970년대 후반 잠비아의 Kaputa 지역을 대상으로 한 WHO의 케이스 스터디는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이 그 태생에서부터 한계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조그만 어촌 경제에 의존하던 Kaputa는 의료 시설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의료사각지대였다. 'Kaputa 통합 개발 프로젝트'는 지역 공동체에 의해 이 지역에 기본적 공중 보건 서비스를 공급한다는 목표 아래 시작되었는데, 곧 지역 공동체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는 반대의 목소리에 직면했다. 생계를 잇기에 바쁜 지역 주민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참석해야 하는 '지역 개발 위원회 (village development committes)'에 참여하기를 꺼렸고, 6주 간의 교육을 받고 'Community welfare worker'가 되어 봐야 아주 적은 수당을 받을 뿐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정부의 지원을 거의 늘지 않았고, 약간의 예산마저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행정 체계 때문에 중간에 사라지기 일쑤였다.도시의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 엘리트 또한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이 서양 의료 지식에 기초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 대신에 농촌 신간 지역의 주민에게 값싼 비용으로 저급한 서비스를 보급하려는 '이류 정책'일 뿐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또 다른 비판은 국제개발 기관 내부에서 제기됐다. 애초에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를 틀을 함께 세운 WHO와 UNICEF가 의견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 WHO는 냉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여 '위로부터 아래로의' 질병 중심적 의료에 노력을 쏟았지만 앞서 말해듯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WHO 내부와 외부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의사이자 선교사로 개발도상국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던 일군의 학자들의 목소리였다. 이들은 현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포괄적 빈곤 퇴치의 중요성을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특히 세계선교협회의(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와 루터교 세계연맹(the Lutheran World Feferation)이 함께 발족한 기독교 의료 위원회(the Christian Medical Commission)가 큰 역할을 했다. WHO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책을 낸 John Bryant나 당시 존스홉킨스 대학의 공중보건대 학장을 맡고 있던 Carl Taylor 등이 이 단체의 회원이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WHO와 기독교 의료 선교회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싹텄다. 당시 WHO 본부와 세계선교협의회 본부가 제네바의 같은 거리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WHO 임원진 50여 명이 기독교 의료 선교회가 발행하는 저널 'Contact'를 구독했다는 사실 등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변화의 움직임은 덴마크 출신의 Halfdan T.Mahler가 WHO의 수장이 된 1973년을 기점으로 더욱 활발해졌는데, 기독교 목사를 아버지로 둔 그는 1950년부터 남미의 농촌 지역에서 일하며 선교와 의료 개혁에 강한 신념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Mahler가 주도하에 WHO는 미국 외교관 출신의 Henry Labouisse가 수장으로 있던 UNICEF와 공동으로 긴밀히 협력하며, 1975년 'Alternative approach to meeting Basic Health Needs in developing countries'란 보고서를 발간하여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정책의 방향 전환을 선언한다. ‘barefoot doctor'로 널리 알려진 중국 공중보건 정책의 성공을 경계하는 미국의 냉전 외교와 기독교 중심의 선교 의료가 긴밀하게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은 (중국을 겨냥해) 소련에서 개최한 알마-알타 회의의 선언 채택(1978)과 더불어 개발도상국 공중보건을 위한 공식적 정책으로 자리잡는듯 했다.
그러나 1978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의 정점이자 후퇴의 시작과도 같은 해가 되고 만다. WHO의 총재H. Muhler와 뜻을 같이 해온 Henry Labouisse가 1979년 UNICEF를 떠나고, 하버드 출신의 경제학자인 James Grandt가 수장이 되자, UNICEF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UNICEF는 포괄적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접근을 통해 2000년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Health for All by 2000)는 알마-알타 선언의 목표가 많은 비용을 요하는 이상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UNICEF만이 아니었다. 폭펠러와 포드 재단을 비롯해 케내디 정부의 국방장관을 엮임하고 1968년부터 세계은행의 수장을 맡아온 Robert S. McNamara와 USAID를 대표하는 J.Gillian 등이 개발도상국의 빈곤 완화와 공중 보건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세워야 하며, 비즈니스 경영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국제개발 기관을 포함하여 원조 수여국 정부들이 원하는 것은 포괄적인 개발의 비전이 아니라 경제적이며 측정 가능한 현실적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비판은 곧 기존의 괄적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를 대신해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Selective Primary Health Care)를 추진하자는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Selective Primary Health Care)는 알타-알타가 선언한 '빈곤 완화와 농촌 개발을 통한 보건과 건강'이라는 보다 큰 비젼의 포기를 뜻했다.
지역 공동체의 주도로 식수, 주거, 식량 사정을 포괄적으로 개선하여 전반적인 건강 상태의 향상을 이끌자던 기존의 근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의 주요 원인이 되는 특정 질병을 우선적으로 퇴치하자는 '선택적' 개입 정책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방벙론적으로는 UNICEF가 제안한 'GOBI (Growth 성장 관찰, Oral rehydration 구강 재수화 치료, Breast-feeding 모유 수유 촉진, Immunization 결핵,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홍역 등 6대 질병에 대한 면역 강화)' 전략이 채택되었다. 후에 여기서 'FFF(Food supplmentation 영양보충, Female literacy 여성 문맹률 개선, Family planning 가족 계획)이 덧붙여져서, 널리 알려진 'GOBI-FFF' 가 탄생했다.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가 5세 이하 유아 사망률 개선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많지만, 이것인 농촌의 빈곤 완화, 지역개발, 전반적 공중보건 개선에 얼만큼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찾기 쉽지 않다. 1980년대 중반 이후 'GOBI-FFF' 분야에서 출판된 저널들은 건강 문제를 농촌 개발의 포괄적 맥락에 놓기보다 기술적이며 경제적인 논의에 중점을 둔다.
개발도상국 빈곤 완화를 위한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이 처음으로 논의되던 배경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앞서 언급했듯 이 정책은 1950-60년대의 질병 중심 의료의 실패에 대한 반응이었다. 냉전 상황에서 소련과의 경쟁을 의식한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WHO가 개발도상국의 말라리아를 비롯한 몇몇 질병 퇴치 중점을 뒀고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오히려 농촌 빈곤은 악화되는 모순이 있엇다. 영아사망률은 개선되어 인구는 늘어나는데 위생시설은 여전히 부족했고 식량은 모자랐다.이에 대한 해결책이 전반적인 농촌 개발을 중시하는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이었다.이러한 기초 의료 서비스 접근을 포기하고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Selective Primary Health Care) 접근으로 돌아선 것은 그 옹호자들의 주장대로 정말 한정된 자원을 갖고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맥락 두 가지를 짚어두자. 앞에 살펴봤듯 개발도상국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공중보건 및 농촌개발 정책은 냉전 시대의 정치적 맥락 안에서 고안되고 실행에 옮겨진 냉전의 산물이다. 외부 국제개발 기관들이 내세운 정책 (기초 의료 서비스 접근이든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 접근이든)은 모두 냉전의 맥락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정책들은 냉전 종식과 더불어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시작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주도의 경제성 논리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1980년대부터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널리 시행된 구조조정정책(Structural Agjustment Progemme)이 농촌 빈곤과 보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자. 1978-80년대에 포괄적 기초 의료 서비스 (Primary Health Care) 접근을 택하고 있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 보츠와나, 브루키나 파소, 말라위, 탄자니아, 잠비아 등은 1980년 후반 들어 세계은행과 IMF가 강제한 구조조정정책(SAPs)을 받아들였고, 부채 상환을 위해 공공예산 지출을 줄이라는 압박을 받았다.1994년 코트디부아르에서 시행한 케이스 스터디는 구조조정정책이 구체적으로 농촌 빈곤층의 보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커피와 코코아 수출에 주로 의존하던 코트디부아르는 이들 상품의 국제시장가격이 무너지면서 경제 불황을 겪고 1981년 구조조정 정책을 받아들였다. 이 정책이 교육, 의료 등에 지원되는 공공 예산의 축소를 강요했음에도 코트디부아르 정부의 실질적 예산 집행액은 (아프리카 정부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커다란 변화없이 이전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도 농촌 빈곤층이 기본적 서비스 충족에 있어서 실질적인 후퇴를 경험했다면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이는 예산 집행 총액이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집행 내역에 변화가 있었음을 뜻한다. 19985년 코트디부아르의 공공보건 예산 총액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 가운데 농촌 지역의 기초 의료 서비스 보급에 집행되는 금액은 전년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이 금액은 임금 항목으로 고스란히 이전되어 지출되었다. 구조조정정책의 시행으로 경제가 위축되자 엘리트들이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를 공급한다는 정책은 농촌 빈곤층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이라며 오명을 씌고 비판을 받았다. 경기침제와 구조조정정책으로 가계 지출액이 줄어들자 빈곤층은 가장 먼저 의료비 지출을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식수, 위생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이자 질병률이 높아졌다.
농촌 빈곤층의 반발에 직면하자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포괄적 기초 의료 서비스에서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Selective Primary Health Care)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면역 사업에 집중한다. 이 정책은 농촌 빈곤층 3분의 2에 기초 면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공을 거둬, 구조조정이 공중보건의 질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사례로 회자된다.
여기서 다시, 포괄적 기초 의료 서비스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 가운데 세계은행의 수장 Robert S. McNamara와 USAID의 장관 J.Gillian가 있었음을 기억해보자. 구조조정 정책이 아프리카를 강타한 시기와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시기가 겹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 접근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와 이렇게 손을 잡았다. 건강을 질병이 아니라 빈곤의 문제로 바라보고 통합적 농촌 개발을 통해 공중보건 문제에 접근하려던 기초적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 접근은 구조조정시기와 맞물리면서 제대로 실행되어 보지도 못하고, '선택적' 접근에 그 자리를 내어줬다.
이 글은 세계은행과 옥스팜의 '시장이냐 공공이냐' 논쟁에서 출발했다. 이제까지의 논한 그간의 역사가 이 논쟁에 무엇을 시사하고 있을까. 세계은행은 1993년 '세계 개발 보고서 (World Development Report : Investing in Health)' 출간을 시작으로 개발도상국의 농촌 빈곤층에게까지 의료 서비스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 주도형' 접근을 도입해야 하며, 공공 보건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 요금 혹은 분담금(user fee)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농촌 개발(rural development)나 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라는 표현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성장을 위한 인적 자본(Human Capital) 개발이란 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980년 후반부터 구조조정 정책을 통해 이미 공중보건 의료 예산을 줄여온 아프리카 정부들은 이 보고서의 출간과 더불어 또 한번 예산을 삭감하고, 의료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민간 의료 보험, 사용자 요금, 민관 파트너십, 비용효과성 등이 보건의료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생계조차 잇기 어려운 빈곤층이 이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채였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형평성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1988년 기초의료서비스(Primary Health Care)를 옹호했던 Mahler가 일본인 내과의사 Hiroshi Nakajima에거 WHO의 수장 자리를 내어준 이래 WHO는 줄곧 탈정치화의 길을 걷고 있었고, UNICEF는 경제학자 James Grnat의 영향력 아래서 선택적 기초 의료 서비스를 주창하고 있었다. 국제개발기관 내에서 통합적 농촌 개발의 비젼 속에 자리한 기초의료서비스(Primary Health Care)접근은 힘을 잃었고, 그 논쟁의 공백을 세계은행이 주창한 '시장 주도형' 의료 개혁이 채우기 시작했다.다른 한편에서는 빌 앤 맬린다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기업형 자선가들이 말라리아, AIDS HIV, 결핵 등을 대상으로 '질병과의 싸움'에 목소리를 세웠다.
이렇게 정부의 지원 하에 지역 공동체가 주도하여 예방 중심의 공중보건 의료 체계를 만들고, 이를 개발도상국 농촌 개발의 지렛대로 삼자는 1978년 알마-알타 선언은 이렇게 역사 속에서 힘을 잃었다.기초 의료 서비스(Primary Health Care)를 둘러싼 지난 30년의 역사는 '질병의 원인은 빈곤이다'는 단순한 사실이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어떻게 가려지고 왜곡되었는지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냉전의 정치적 논리에,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어떤 언어로 이야기해야 할까. 시장의 효율성과 비용 효과성은 누구의 언어이며, 현실가능성은 누구의 수사일까. 개발은 지식과 기술, 자본을 가진 강자와 어떤 것도 갖진 못한 약자가 싸우는 전장이다. 강자는 숫자로 지식으로 말하지만 약자는 고충의 역사를 통해 말한다.
지난 학기에 쓴 에세이를 많이 고쳐서 다시 쓴 글. 숫자는 줄이고 목소리 톤은 많이 높였다. 영문으로 쓴 글을 우리 말로 다시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영어도 한국어도 다 망한 기분. 내일이면 개강이다. 어흑.




덧글
2011/01/30 22:5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저도 섹터럴 어프로치의 한계와 장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이쪽인거 같아요.
저는..숨은 댓글님과는 정반대로 제 전문영역이 없으니 이쪽은 애초에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고... 넓고도 깊더라고요.
2011/08/21 03:1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