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03 01:08

폴 콜리어 <빈곤의 경제학 The Bottom Billion > (1) 개발 학/업 노트

<빈곤의 경제학>을 다시 읽는다. 카리스마의 제프리 삭스라면, 명민함과 차분함의 폴 콜리어다. 베틀은 아니지겠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로 국제개발의 여러 문제들을 새로운 방향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야를 넓혀준 책이다. 두고두고 찾아볼 일이 많을 것 같아, 내용을 정리해둔다. (이하는 책의 전반부에서 다뤄지는 내용)

1. The bottom Billion (범주의 문제)

선진국 인구 10억과 가난한 인구 50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유하거나 늦게나마 경제성장의 궤도에 오른 개발도상국 50억과 세계경제체제의 밑바닥에서 계속 뒤쳐지고 있는  나머지 10억의 인구가 있다. 그런데 ‘개발’ 문제를 60억 인구 가운데 '개발도상국' 50억의 인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상정하면, 밑바닥 10억의 절박함이 묻혀버린다.

'
개발도상국' 중심의 개발은 'The Bottom'의 10억에게는 '남의 이야기'에 가깝다.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성장을 지속하던 1990년대에 밑바닥 국가들의 경제는 매년 05.퍼센트씩 하락했다. 이들의 경제 상황은 1970년도보다 더 악화됐다. 지은이는 밑바닥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을 개발도상국과 같이 평균값을 내서 고찰하는 것은 내부 상황을 배제한 숫자놀음일 뿐이라며, 이 둘을 분리하면 밑바닥 국가의 경제성장 문제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안하는 표현이 'The Bottom Billion(밑바닥 10억)'이다. 가난과 전쟁, 기아에 시달리는 가장 절망적인 인구 10억을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찾자는 것이다. 여기에 지리적 개념으로 '아프리카 +'라는 표현이 덧붙는다. 밑바닥 10억의 인구 가운데 80퍼센트가 사는 아프리카에 보태 아이티, 볼리비아, 라오스 같은 나라들을 함께 일컫는다.

2. 개발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하는 말, 그리고 성장 
어떤 사람들은 개발을 말할 때 여자 아이들의 학교출석률 같은 구체적인 목표(MDG)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지속가능성과 같은 주제를 선호한다. 개발 필드에 있는 사람들은 개발을 (경제성장률이나 GDP로 평가하는)‘경제 성장’의 문제로 보기를 저어하는 편이다.

지은이는 밑바닥 10억의 핵심 문제를 ‘경제 성장 실패’로 파악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성장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밑바닥 국가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성장의 사다리에 다리를 걸치던 시기에도 계속 미끄럼틀을 탔다. 책은 그 이유를 네 가지 덫으로 설명하고, 밑바닥 나라가 이 덫에서 벗어나려면 내부의 자체적 변화와 더불어 G8 등의 외부의 정책적 지원을 강조한다.

네 가지 덫 ; 밑바닥 국가들은 아래 네 가지 덫 가운데 한 개 이상의 덫에 걸려 악순환을 거듭한다.

3. 분쟁의 덫
폴 콜리어와 앙케 회플러는 저소득이 내전의 발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전쟁 때문에 가난해진다는 통념과는 반대로 가난하기 때문에 전쟁에 휩쓸리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① 초기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 ② 경제 성장이 둔화, 침체되거나 하락한 나라 ③ 천연자원 1차 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내전 발발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정치적 억압, 소득불균형, 식민지 역사, 사회적 불만, 민족적 다양성 등과 내전의 위험 사이에는 관련성이 없다. 반란군, 반정부 투쟁 역시 정치적 신념보다는 천연자원 이권 확보와 같은 경제적 동기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예. 시에라리온 반군 -> 다이아몬드 채굴권 요구하며 정부의 휴전 제안 거부)

내전은 매년 경제 성장률을 2.3퍼센트 정도 낮추는 경향이 있으며, 내전을 겪은 나라가 10년 이내에 다시 분쟁에 휩싸일 가능성은 50퍼센트다. 책은 경제 성장 없이 분쟁의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G8 등 외부의 지원을 촉구한다.

4. 천연자원의 덫
풍부한 천연자원의 발견이 성장의 덫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밑바닥 국가의 29퍼센트가 천연자원 풍부한 나라). 그 이유로는 ➀ 네덜란드 병 ➁ 상품가격변동에 대한 취약성 ➂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방법의 미성숙(견제와 균형 부재) 등이 있다.

①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 네덜란드는 1970년대 유전 개발에 따른 석유 수출 증대로 호황을 누렸지만 오히려 경제 활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이는 석유 수출 증대에 따른 대량의 외화 유입 -> 외화를 자국 통화와 교환하려는 수요 급증, 자국 통화 가치 상승 -> 통화 절상으로 인해 제조업 수출 경쟁력 약화 -> 경제 성장 저해로 설명할 수 있다. (IMF는 네덜란드 병을 근거로 들어 국제원조가 수혜국의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비판)

② 상품가격변동에 대한 취약성 : 천연자원 가격은 국제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으며, 이에 의존하는 국가를 불안하게 한다. 세수가 불안정한 정부는 불황기에 공공지출을 삭감하여 이에 대처하는데 이 때문에 사회 기초 분야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어려워져서 성장 동력을 잃는다. (예. 나이지리아의 1980년대 오일 붐)

③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부재 :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천연자원이 없으면서 완전히 민주화된 나라는 독재 국가보다 매년 2퍼센트씩 더 성장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소득에서 천연자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20퍼센트 이상이 되면, 민주주의 체제는 오히려 경제성장에 역효과를 낸다. 독재 체제를 택한 경우보다 경제 성장률이 3퍼센트 정도 낮아진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연자원 지대는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잠식한다. 천연자원 지대가 풍부한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야할 필요성이 적으며, 국민들 역시 국세의 사용에 큰 관심이 없으므로 정부에 대한 감시 책임을 회피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 경쟁이 법적 절차로 보장되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정실주의’가 득세하기 쉽다. 정부는 사회간적자본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유권자들을 돈으로 매수하려 든다. 또 천연자원이 풍부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투자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집권 정부는 장기적인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기보다 당장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눈앞의 성과에 연연한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밑바닥 나라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정착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오히려 독재보다 경제성장에 해롭다. 형식적인 선거 경쟁보다 정치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비중 있게 다루는 실질적 민주주의 체제가 더욱 필요하다. (예. 보츠와나 -> 중소득 국가)

5.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밑바닥 10억 인구 가운데 38퍼센트는 바다와 단절되어 있는 내륙국에 산다. 제프리 삭스에 따르면 내륙국은 해안을 면하고 있는 국가들보다 경제 성장률이 05.퍼센트 정도 낮다. 그런데 내륙국이라는 같은 입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위스는 부유한 데 비해 우간다는 가난한 이유는 무엇일까. 폴 콜리어는 인접 국가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륙국의 운송비용은 인접 연안 국가가 교통 인프라에 얼마나 투자하는가에 달려있다. 또 인접 국가는 그 자체가 수출 시장이다. 어떤 국가가 기존 경제성장률에서 1퍼센트 추가 성장할 경우 인접 국가 또한 평균 0.7퍼센트 정도 추가 성장하는 경향(‘경제의 스필오버 효과’)이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내륙 국가들은 인접 국가들에게 기댈 상황이 못 된다.

책에서는 내륙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① 무역 장벽을 낮추는 등의 지역경제 통합을 통한 스필오버 효과 확대 ② 연안 접근성을 높이는 교통 인프라 확대 ③ 금융 서비스, 좋은 정책 환경 제공을 통한 비즈니스 중심지로의 부상 ④ 영공 개방 및 전자 서비스 확대 ⑤ 이민자들의 송금 극대화 ⑥ 원조, 외부의 추가 지원 등을 제안.

6. 작은 국가의 나쁜 통치
지은이는 세계은행이 개발한 ‘국가별 정책 및 제도 평가’를 활용하여, 나쁜 통치와 나쁜 경제 정책을 가진 나라들 즉, ‘실패하는 국가’들의 변화 가능성과 그 변화를 이끄는 요인을 살핀다. (밑바닥 인구의 3/4 이상이 ‘실패하는 국가들’로 분류됨)

실패하는 국가들은 ① 인구가 많을수록 ② 중등 교육을 받은 인구가 많을수록 ③ 내전에서 갓 벗어난 경우일수록 좋은 통치와 좋은 경제정책 쪽으로 일정 시간 이상 꾸준하게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경향이 있다. (탈분쟁 국가의 상황은 더 유동적. 폴 콜리어는 탈분쟁 상황을 변화를 위한 중요한 기회로 강조)

실패하는 국가들이 성공적인 방향 선회를 할 가능성은 1.6퍼 정도이고, 실패하는 국가들이 나쁜 통치와 경제 정책에서 벗어나는 데 소요되는 평균 기간은 59년으로 방향 선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폴 콜리어는 실패하는 국가가 좋은 통치와 경제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의 가치를 최소 1,000억 달러로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실패하는 국가들의 방향 전환을 돕기 위한 개입의 근거를 마련한다. (이후 내용에서 실패하는 국가의 방향 선회를 위한 비군사적 개입 방식, 실패하는 국가의 자체적인 변화 노력을 외부에서 후원하는 개입 방식 등을 살핌)

7. 생각해 볼 점
①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국제NGO나 좌파는 UN이 공식화한 ‘최빈개도국(최저개발국, LDCs, Least Developed Country)’란 표현보다는 '최빈국'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한편 우파는 대체로 '저소득 국가'로 뭉뚱그려 부르는 편이다. 책은 콜 폴리어가 제시한 표현 ‘The Bottom Billion을 ‘밑바닥 10억’으로 번역했다. 이와 같은 ‘호명’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국제개발의 효과성과 관련해 논의한다면. 그리고 ‘밑바닥 10억’이란 번역어의 적설성에 대해.

② 중국의 자원 수요 급증, 미국의 석유 수입 중동 일변도 탈피 움직임, 최근의 ‘commodity boom‘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아프리카는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아프리카는 폴 콜리어가 말하는 ’천연자원의 덫‘에 빠지지 않고 지금의 기회를 경제성장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까. 국제개발 섹터는 책에서 말하는 ’견제와 균형‘의 실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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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수정 2010/05/03 20:25 # 삭제 답글

    빈곤의 경제학 내용에 보면 네덜란드가 유일하게 천연자원의 덫에서 탈출한 국가라고 하는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 더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더라구요
    혹시 아시는지요..;
  • cklist 2010/05/04 09:11 #

    <빈곤의 경제학>에서는 네덜란드가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하게 확인하긴 어렵네요. 콜리어가 꼽는 4가지 빈곤의 덫 가운데 하나가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인데, 이와 관련해서 네덜란드는 애초에 유럽이란 시장과 인프라가 있었다고 얘기한 것 같아요... 라고 쓰지만 확실한 건 아니고요. 오후에 집에 들어가면 책을 다시 찾아봐야 겠네요.
  • GP3 modi. 2011/05/29 16:36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화와 빈곤문제 공공인식 프로젝트'에서 빈곤자료 제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폴 콜리어의 밑바닥 10억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cklist님께서 올려주신 자료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당연히 출처에도 밝혔구요~
    깔끔한 정리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아래 메일주소로 메일주세요~
    luv_jenny@naver.com
  • cklist 2011/06/01 17:11 #

    안녕하세요, 댓글로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용글의 출처 밝혀주셔서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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