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5 06:42

GMO이어 원자력, 빌 게이츠의 '착한 자본주의'가 가는 길 사회적기업, 개발과 비지니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은 3월 23일자를 통해 빌 게이츠가 일본의 도시바와 차세대 원자로 공동개발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빌 게이츠가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 원자력 벤처회사 ‘테라파워’가 개발중인 신형 원자로에 도시바의 기술을 접목해 핵연료 교환 없이 최장 100년간 연속 운전이 가능한 원자로 개발을 추진한다.

빌 게이츠와 도시바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차세대 원자로는 ‘TWR'로 불린다. TWR은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현행 원자로와 달리 우라늄 농축 시에 발생하는 부산물인 열화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차세대 원자로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수년 주기로 연료를 교환해야 하는 현행 원자력 발전소에 비해 연료 교환 없이도 수십 년간 연속 운전이 가능하며, 핵폐기물 처리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보도에 앞서 빌 게이츠는 지난 2월에 열린 ‘TED 2010 컨퍼런스‘에서 ’청정 에너지‘를 주제로 강연했다. 빌 게이츠는 이 강연에서 기후변화를 막고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지지하려면, 지구를 덥히지도 않고 가격도 절반에 불과한 청정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연소된 우라늄을 재활용하는 ’방사능 재활용‘이란 아이디어를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여기서 말한 ’방사능 재활용‘이 곧 TWR이다.

"저는 오늘 에너지와 기후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다소 놀라울 수 있는데, 제가 제 재단에서 풀타임으로 하고 있는 일은 대부분 백신과 씨앗에 관한 것으로 20억에 달하는 극빈층을 돕기 위해서 발명하고 지원해야 할 것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너지와 기후는 극빈층에게도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사실, 이들보다 에너지와 기후 문제가 중요하게 다가올 만한 사람들이 없죠. 기후가 나빠진다는 것은 그들이 재배하는 작물이 오래 세월동안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후변화는 그들에게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에너지 물가도 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빈곤을 줄이기 위해 한 가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면 대부분 에너지를 선택할 것입니다. 실제로 선진 사회는 에너지 발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전기를 더 싸게 만들고자 할때, 예를 들면 현재의 절반 가격으로 전기를 생산하려면 새로운 제약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산화탄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이 강연은 그간 말라리아 백신 공급 및 식량 문제 해결에 집중해온 빌 게이츠와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이 에너지 문제로 관심을 넓혔다는 데서 주목을 끌었다. 게이츠는 “기후변화로 인해 비극이 생기면 극빈층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 생산 비용도 낮추는 청정 에너지원 개발이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처럼 말라리아 백신 개발 및 공급, 식량 생산량 증대를 위한 최빈국 농촌개발 지원, 에너지 가격 폭등과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청정에너지 개발 지원으로 이어지는 빌 게이츠와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의 행보는 빌 게이츠가 제시한 ‘창조적 자본주의’ 혹은 ‘친절한 자본주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빌 게이츠는 2008년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시장의 힘을 빈곤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지금까지의 냉혹한 자본주의와는 다른 따뜻하고 친절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며 ‘창조적 자본주의’ 또는 ‘착한 자본주의’론을 펼친 바 있다. 아프리카의 커피 농부들이 세계 커피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백신 프로그램을 빈국 주민들에게 연결해주는 일 등은 시장 솔루션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1]

이 같은 입장은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혁신과 기업가정신, 시장 확대 가능성을 강조하는 철학은, 항바이러스 토마토, 자석을 이용한 말라리아 진단장치 등 주류 제약업계에서는 재정 지원을 받기 어렵지만, 일단 성공하면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에게 강력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기술을 지원하는 데로 이어지기도 했다.

말라리아 백신 개발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빌 게이츠 재단은 중국에서 말라리아 치료용으로 사용되던 식물을 원료로 하는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니신의 대량 생산을 위한 연구에 4천26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 연구로 발효기(생화학 반응기)가 만들어지면 매년 5억 명분의 치료제 생산이 가능해지면 현재 약 2달러에 육박하는 말라리아 치료제의 가격이 10분의 1수준인 20센트 이하로 낮아질 전망이다.2]

이 같은 접근은 빈곤국의 식량 및 농업 분야 지원에서도 흐름을 같이 한다. 빌 게이츠 재단은이 초국적 농기업 몬산토의 지속가능한 수확량 증진 프로젝트를 후원한다.3]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강수량 감소, 인구 증가가 맞물려 최악의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2012년까지 가뭄에 강한 옥수수를 대량생산하려는 계획이다. 농업 분야에서 뒤떨어진 아프리카에 생명과학 기술이 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인데, 가뭄에 강한 옥수수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한 종류다. 빌엔멜린다게이츠 재단의 이런 행보를 두고 영세농민을 궁지로 몰아넣는 초국적 농기업의 아프리카 진출 및 GMO 보급을 지원한다는 비판도 강력하게 제기됐다.

시장과 기업 솔루션을 내세운 빌 게이츠의 ‘친절한 자본주의’는 엄청난 투자 비용을 쏟아부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지만, 이에 대해 비판도 만만찮다.

대표적인 것이 빌 게이츠 재단이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자선’ 그 자체보다는 자선을 통한 ‘시장 확대’에 우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비판은 빌 게이츠 재단이 다우케미칼, 타이코인터내셔널 등 미국과 캐나다의 최대 공해물질 배출회사와, 환자들이 살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에이즈약을 고가로 책정하고 있는 제약회사들에 투자하고4], 몬산토 같은 초국적 농기업을 사업 파트너로 지원하며, 식량 위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바이오 에탄 분야에(2006년  바이오 에탄올 생산업체인 퍼시픽 에탄올에 84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대주주가 됐다)분야에 투자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빌엔멜린다게이츠 재단의 자금 가운데 5%만 자선 기금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95%는 제약, 석유, 에너지 등의 분야에 투자하는 상황이니 일부에서는 자선을 내세운 자선 ‘주식회사’ 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빌 게이츠는 C.K. 프라할라드(C.K. Prahalad)가 그의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를 자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기도 했는데, 이 책은 연소득 300$ 이하의 세계 40억 인구를 ‘저득층시장 (Bottom of Pyramid)’이라는 비즈니스 기회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또 세계은행 출신이자 'The white man's burden' 을 쓴 윌리엄 이스터리 교수 역시 “기업들의 힘으로 글로벌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구할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빌 게이츠의 차세대 원자력 투자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바의 사사키 사장은 MBC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차세대 원자로를 보급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어야 한다는 것이 빌 게이츠의 생각입니다.”라고 밝혔다.

도시바는 2006년 미국의 원자력 발전설비 생산업체인 웨스팅하우스 지분 77%를 41억 6000만 달러에 인수한 회사다. 한국의 중동 지역 원전 수주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세계 원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에 새로 짓는 원전은 대부분 이 웨스팅하우스가 따냈다.

빌 게이츠가 투자한 도시바의 차세대 원전이 웨스팅하우스의 시공력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리란 전망은 비즈니스의 차원에는 새로운 이이갸기 아닐지 모르지만, 이것이 빌 게이츠의 말대로 기후변화로 인한 비극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술이자 해법이 될지는 무조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치적인 측면의 이야기도 있다. 빌 게이츠가 ‘개발도상국을 위한 청정에너지’라고 표현하는 원자력 발전은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성장 분야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미국이 원자력을 비롯한 청정에너지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지 않는 것이 불만이라고까지 했다. (프리드먼 또한 원자력을 자연스럽게 청정에너지 산업에 포함시킨다)

청정에너지 사업을 좀더 들여다보자.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제시한 교토 메커니즘에는 공동이행(Joint Implementation),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배출권거래제도의 3가지 수단이 있는데, 이 가운데 공동이행과 청정개발체제는 자국의 영토뿐만 아니라 타국의 영토에서 실현한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자국의 감축목표 달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원자력은 현재 청정개발체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G8 정상회의에서 원자력을 청정개발체제 수단으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등 변경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의지대로 원자력이 청정개발체게에 포함되면 어떻게 될까?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제기구가 개발도상국의 원전 건설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5]), 에너지를 민영화된 상품으로 생산해서 팔며,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실적까지 인정받아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게 된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

이것이 빌 게이츠가 차세대 원자력으로 개발도상국을 돕겠다고 나선 배경 가운데 하나다. 빌 게이츠가 시장의 힘으로 빈곤 문제를 풀 수 있다며 ‘착한 자본주의’ 혹은 ‘창조적 자본주의’를 내세우고, 빌엔멜린다게이츠 재단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가난한 나라에 쏟아 붓는 한 켠에는 이런 이야기들도 자리하고 있다.

빈곤 문제를 풀는데 창의와 혁신을 중시하는 기업가 정신은 역시 이 오래된 숙제를 푸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도 중요한 답이다. 문제는 빌 게이츠의 행보가 ‘자선’으로 포장된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참고]
1. 아시아경제, 2008년 8월 3일.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8080314321939862&nvr=
"창조적 자본주의로 빈곤 타파하자" 빌 게이츠 MS 전 회장 시사주간 타임에 기고 … "빈곤 타파에 기업 참여 절실" 강조

2. 연합뉴스 2008년 6월 4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8/06/04/0200000000AKR20080604159700009.HTML
"말라리아 치료제 대량생산.."2년내 완치"

3. 매일경제 2009년 5월 13일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274801
케빈 엡렌 몬산토 지속가능한수확량증진(SYI) 총괄 담당 부사장 인터뷰

4. 한겨레신문 2007년 1월 8일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globaleconomy/182873.html
빌 게이츠 자선재단, ‘약주고 병주고’

6. 서울경제 2010년 3월 12일 http://economy.hankooki.com/lpage/worldecono/201003/e2010031217405169740.htm
'떠오르는 한국 원전' 의식? 사르코지 "원자력산업 대대적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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