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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사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 Barefoot College 대안기술과 국제개발

라자스탄주 틸로니아를 비롯해 인도 13개 주에 20여 개의 캠퍼스를 가진 자발적 배움의 그물망 맨발대학. 그곳엔 회계사, 예술가, 영화제작자, IT전문가, 물 전문가, 태양열 기술자, 건축가, 디자이너, 보건위생 관리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공부하며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인근 150개 마을의 5세 미만 영유아를 위해 영양식을 공급하는 일, 여성들에게 피임과 안전한 출산에 대해 가르치고 진료하는 일, 안전한 물의 중요성과 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일에서부터 직접 교육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틸로니아 지역에서 Bare Foot College가 하는 일은 방대했다. 그러나 다른 개발프로젝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Bare Foot College의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외지에서 온 전문가와 단체가 아니라 지역의 일꾼들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Bare Foot College는 글을 읽지 못하는 농부, 천민, 여성들에게 배울 기회를 열어 그들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게 했다. 그 말은 그들이 뜻을 세우고 익혀 스스로 전문가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Bare Foot College의 개발 프로젝트들은 느리고 더뎠다. 그러나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학교는 틸로니아에서 4천 명이 넘는 지역의 전문가를 길러냈고, 지금도 1만 5천 명의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다. Bare Foot College이 일구어낸 개발은, 사람이었다.

펌프를 놓아드릴까요? 펌프 놓는 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어렵게 시간을 내너 마주한 Bare Foot College의 창립자 벙커는 초창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불쑥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펌프를 둘러싼 여성들, 그리고 한 남성이 중앙에 서 있는 풍경이었다.

"그 사진이 뭐 하는 장면 같은가요?" "글쎄요. 한 전문가가 우물 파는 법을 가르치고 여성들이 배우는 것?"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은 마을 여성들이 펌푸를 설치하고, 한 남성이 그것을 돕고 있는 것이었다. 벙커는 가뭄과 물 문제로 고통받는 마을에서 펌프를 설치하다가 그녀들에게 물었다. "외부에서 온 전문가에게 기대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직접 배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외부의 전문가는 늘 남성이었고, 권위적이었으며 부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들에게 전문가가 되겠느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그들은 천민이었고, 더욱이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 찾아온 그 물음 앞에서 용기는 내어 배우고 익히고 싶노라고 답했다. Bare Foot College는 마을에 펌프를 설치해주는 대신 마을 여성들에게 펌프 설치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스스로 전문가가 되었다. 새로운 전문가들이 지역마나 생겨나 늘 배우는 이들이 있을뿐 '교사'는 없었다. 먼저 배운 여성들이 나중에 배우기 시작한 여성들을 가르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Bare Foot College를 통해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권리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여성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열정으로 이 학교를 함께 일구기 시작했다.

전기세가 너무 비싸죠? 그럼 전기를 만듭시다.
틸로니아에서 사람들이 가장 고통 받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면 그것은 물과 에너지였다. 펌프 설치로 물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가고 있을때, 사람들은 에너지 문제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정부 에너지는 너무 비싸요. 전기세가 무서워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전기를 쓸 수 없고, 가스가 떨어지면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없어요." 틸로니아는 가스가 떨어졌다고 해서 베어다 쓸 나무조차 사라진 황막한 초원이었다. 그때 Bare Foot College에서 사람들을 형해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비싼 전기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틸로니아의 해는 강하고 뜨거웠다.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건조했고, 나무를 가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생각한 것이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 '쏠라쿠커'였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쏠라쿠커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 교육생들은 석 달 정도를 머물며 배우면 돌아가서도 자립적으로 기계를 만들 수 있게 되죠. 보통 8인용 조리기구 하나로 한 달에 14kg, 마을을 위한 100인용 조리기구로는 84kg의 가스를 절역할 수 있는 생활도구가 되니 무척 실용적이죠. 게다가 기술은 배운 여성들은 태양열 조리 전문가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힘들지만 배워 볼만한 일이에요."

쏠라쿠커를 만들던 책임자가 잠시 일손을 놓고 설명해 주었다. 여성들의 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조리기구만이 아니었다. 글도 못 읽는 시골 여성들은 쏠라쿠커는 물론, 태양열 축전지 제작법, 태양열 집열판 설치 및 수리법까지 배워 인도 전역에 그것을 보급하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이미 350개가 넘는 인도의 마을에서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쏠라쿠커와 쏠라램프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Bare Foot College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인도의 가난한 여성들만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노르웨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온 아프간 여성들을 시작으로 부탄, 잠비아, 시에라리온 등에서 가난하고 돈이 없는 이들이 Bare Foot College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 학교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스스로 삶을 일으켜온 여정과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몇 달씩 Bare Foot College에 머물며 기술을 배우는 여성들 가운데 영어를 할 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술을 배우는 데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쏠라램프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교실에는 무지개 색으로 태양의 색을 분해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기계를 조립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그림들이 붙어있었다. 그 교실에서 이미 수많은 이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몇 개 월 만에 태양열 조리기구 제작법을, 태양열 전등 제작법을 배워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Bare Foot College의 여성들에게 가장 큰 전문성이 있다면 그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어려운 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 그녀들이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로 그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이트 스쿨
Bare Foot College가 또 하나 마음을 쏟고 있는 일은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학교의 특별한 배려로 우리는 그 아이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차는 학교를 빠져나와 메마른 들판과 어둠을 뚫고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10분쯤 가니 마을이 하나 나타나고 골목골목 울퉁불퉁한 길을 차로 들어가다가 곧 내려 걷기 시작했다. 30분 남짓한 거리를 왔을 뿐이건만 어떤 시간의 문을 지나온 듯,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마을은 오랜 가난으로 찌들어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짙은 어둠이 내린 좁고 거친 골목을 겨우 더듬어 가는데 어둠 저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 마지막 모퉁이를 들어서니, 거기 아이들이 있었다.

작은 등불 하나에 의지해, 맨 땅에 앉아 칠판을 마주하고 빙 둘러앉은 아이들. 책상이나 의자는커녕 하늘을 가릴 천막도 없이 밤하늘 아래 등불 하나를 밝히고 공부하는 곳. 그곳이 나이트 스쿨이었다. 마침 수업이 시작된듯 선생님은 자루를 열어 아이들에게 찌그러진 철판과 석필을 나누어 주었다. 행여 방해가 될까 싶어 한쪽 끝에 앉자,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우리를 소개했다.

긴 인사 대신 준비한 한국 동요를 하나 불러주었더니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노래가 끝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저는 람이구요. 7살이에요. 낮에는 염소를 돌보고 밤에는 나이트 스쿨에 와서 공부를 해요." "저는 소날리구요. 13살이에요. 낮엔 동생 셋을 돌보고, 집안일과 소 치는 일을 해요." "저는 롤리에요. 10살인데 농사와 집안 일을 도와요."

자신이 돌보고 있는 동물들을 수줍게 말하는 것이 자기 소개인 아이들. 자기 소개가 끝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손님들이 노래를 불러 주셨으니, 우리도 같이 노래를 하나 들려주자 했다. 아이들은 킥킥대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한참 토닥거리더니 간신히 노래 한 곡을 정했다. 예니골 살 꼬마부터 십대의 아가씨 같은 아이들까지 모두 한 목소리로 우리를 향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박수를 치고, 기쁜 웃음으로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선생님이 노래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아빠, 왜 저를 그렇게 일찍 시집보내셨나요? 저는 엄마, 아빠 곁에 조금 더 살고 싶어요. 엄마, 저는 집이 너무 그리워요. 아빠, 왜 저를 그렇게 일찍 보내셨나요." 슬픈 삶을 한탄하는 노랫말을 듣고 그만 웃으며 친 박수가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젯밤 나이트 스쿨은 어땠나요?" 이튿날 아침 Bare Foot College의 책임자인 왓수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의 노래와 아이들의 노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의 무거움을 읽은 왓수가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 아이들은 그렇게 나약하고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런 나이트 스쿨이 150개의 마을에서 밤마다 열리고 있죠. 하지마 나이트 스쿨을 운영하는 책임자는 어른들이 아니라 바로 낮에 염소를 치고 동생을 돌보는 그 아이들이에요. 어린이 의회를 만들어 교사 선출 문제나, 나이트 스쿨의 방향, 문제점 등을 개선해 나가고 있죠. 나이트 스쿨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치고 싶은 건,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는 법이에요. 성공을 위해 마을과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지식인이 아니라 자기가 선 자리에서 새로운 힘을 깨달아 삶을, 세상을 바꾸어 가는 새로운 아이들이 커나가고 있는 거예요. 난 Bare Foot College의 미래는 이 캠퍼스가 아니라 밤마다 별처럼 빛나는 그 나이트 스쿨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트 스쿨의 교사 중 어느 누구도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Bare Foot College를 통해 새로운 배움을 얻는,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농부였고, 경찰관이었고, 어머니었다.


* 글 출처 : 희망을 여행하라  401~408 쪽
* 이미지 출처 : http://www.barefootcolle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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