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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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이해하는 시각차 국제개발 Insight

언뜻 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저소득층이 생활필수품에 소비하는 금액이 중산층을 앞지르는 경우가 흔하다. 조지프 히스의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은 이를 지적하며 데이비 시플럿의 <근로빈민>(The Working Poor)에 나오는 사례를 인용한다. 세탁기가 망가져서 세탁 비용으로만 한 달에 200달러를 지출하는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외식에도 200달러를 지출했는데, 도시가스 회사가 연체된 요금 400달러를 내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보증금 또는 두 달 치 임대료를 요구하는 지역에서는 빈곤층이 아파트를 임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모텔에 사는 처지에 놓인다. 은행계좌 유지에 요구되는 최소 예치액이 높을 경우 빈곤층은 받은 수표를 현금화 하기위해 고액의 수수료를 매기는 점포를 이용하게 된다. 게다가 저소측층은 전당포나 봉급날만기 소액대출, 구매전에 렌탈 서비스 등을 이용함으로써 대출금에 대한 이자도 훨씬 높게 문다." (조지프 히스, 299쪽)

이런 사례의 쟁점은 정기적 지출액이 커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미리 초기에 지불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냐 하는 데에 있다. 위의 부부의 경우에서 보듯 세탁기 구입 비용이나 도시가스 연체금 400달러를 마련하기 못한 데서 문제가 싹트기 때문이다. 이 경우 최초의 지불 금액을 마련하지 못하면 계속 높은 가격을 내고 소비를 할 수박에 없기 때문에 '처지 개선'이 불가능하다.

이런 해석은 저개발국의 빈곤층의 삶을 그리는데 잘 들어맞는다. 개발도상국 저소득층에게는 '처지 개선 불능' 상태가 빈곤의 원인인 경우가 실제로 흔하기 때문이다. 하루 수입이 2달러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최초의 자본을 마련하기는커녕 끼니조차 때우기 힘들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융자 시스템인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같은 상활을 두고 '빈곤 프리미엄'이란 용어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저소득층 경제의 사회적 인프라와 같은 '환경' 개선의 필요성에 좀더 비중을 둔다. C.K 프라할라드는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에서 인도의 두 지역을 예로 들어 '저소득층 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지적했다.

"저개발국의 저소득층은 고비용 경제 구조에 속해 있다. 뭄바이의 고소득층 지역인 와든 로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저소득층 지역인 다라비 사람들은 똑같은 서비스에 평균 20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다. 저소득층에 대한 고비용 구조는 지역 독점 체제, 낙후된 유통, 강력한 전통적 중개인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된다. 예를 들어 다라비의 저소득층은 그 지역 사채업자에게 600~1000%의 고이자를 감수하고 돈을 빌렸지만, 이 지역에 은행이 진출하면 25%의 이율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25%의 이율은 일반적으로 아주 높은 편이지만, 저소득층의 관점에서는 600%에서 25%로 이율을 낮추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프라할라드, 29쪽)

이런 해석을 따라가보면 '가난은 원인은 가난이다'는 결론에 닿는다. 빈곤은 상황의 산물이지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일견 속시원한 결론인데, 왜냐면 이 논리처럼"빈곤층과 관련된 모든 사회문제가 단순히 빈곤의 산물이기만 하면, 소득재분배로 이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프 히스, 310쪽)

그러나 만약 빈곤이 보다 근본적인 사회문제의 결과라면 어떻게 될까? '빈곤층은 돈이 없어서도 고생하지만 가진 돈을 지출할 때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을 내림으로써 빈곤을 지속한다'는 지적 말이다.

실제로 빈곤 가구의 문제는 단순히 재무적인 측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가 좀 더 영리하게 굴면 사정이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걸 알아요. 어떤 때 저는 주급으로 700달러를 벌어요. 그 정도면 잘 살 수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나 저나 집에만 앉아서 이렇게 저녁을 먹을 수 있으니 된 거 아니냐고는 차마 못하겠는 거에요. 주머니에 여웃돈이 10달러가 있으면 밖에 나가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야식을 사먹게 되더라고요." (조지프 히스의 책, 301쪽)

이런 경우라면 수익이 아니라 '급한 성질'이 빈곤의 원인이다. 저축을 통한 먼 훗날의 행복보다는 지금 당장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이러한 급한 성질이 당신을 가난하게 만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아예 그런 성품을 지닌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는 목적으로 탄생한 산업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조지프 히스, 302쪽). 월급날 갚는 소액 인스타론(즉석융자)이나 구매를 전제로한 렌탈 서비스 같은 산업 말이다.

사람들에게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100달러 짜리 수표와 3년 후에나 현금화가 가능한 200달러 짜리 수표를 내밀고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고 물어보면 다수가 100달러 수표를 택한다. 그러나 같은 사람들에게 6년 후에 현금화되는 100달러 수표와 9년 후에 현금화되는 200달러 수표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다수가 200달러 수표를 고른다. 전자의 경우에는 "3년을 너무 길어. 그러느니 지금 당장 100달러를 받는 게 나아". 후자의 사례에서는 "어차피 6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추가로 3년을 기다리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렇다면 200달러를 선택하는 게 나아."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할인함수' '과대할인율'이란 도구로 설명한다. 이자율이 10퍼센트 일때, 1년 후 110달러의 할인된 현재 가치는 100달러가 된다. 혹은 지금으로부터 1년 후 시점의 100달러는 2년 후의 110달러와 같으므로, 2년후 110달러의 현재가치는 약 91달러가 된다.

그런데 위의 예에서 보듯이 오늘과 3년 후가 다르고, 6년 후와 9년 후가 다르다. 사람들은 9년은 기다려도 3년은 못 기다린다. 시간 지연에 대한 거부감이 단기적으로 극히 과장되는 '과대 할인율'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같은 과대 할인의 아쉬운 점은 근시안적 행위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선택의 비일관성까지 야기한다는 데 있다.

"사람의 할인함수는 나이가 들면서 과대성향을 잃어간다. 또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미래를 덜 과대하게 할인한다. 이 두 경우 모두 인과관계를 뒤집어도 성립한다. 미래에 얻을 만족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사람은 학교를 중퇴하거나 요절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미래를 과대 할인하는 것 또한 의외라 할 수 없다. 가난하다고 꼭 미래를 과다 폄하다는 것이 아니라 해도, 반대로 미래를 지나치게 폄하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조지프 히스, 309쪽)

이쯤되면 가난은 '빈민의 절약정신 결여' 때문이라고 줄기차게 외쳐온 우파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승자박이라는 훈계도 따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대다수의 좌파처럼 생각하도 힘들다. 좌파가 얘기하는 소득재분배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계에 봉착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접근은, 빈곤(부국의 빈곤)은 지독하게 끈질기며, 빈곤층의 자멸적 행동 양식에 의해 악화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순수히 인정하되, 보수 우파가 그로부터 끌어내는 정책적 함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보수적 빈곤 정책의 문제점은 '개인 책임'의 기치를 내걸면서 도덕적 해이와 과대 할인의 차이점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311쪽)

조지프 히스는 도덕적 해의가 아닌 과대 할인이 원인임을 직시한다면 논의는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대할인, 즉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 현재의 소비를 선호하는 결정을 피할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게 관건이란 것이다.
 
흡연자에게 훗날 발생할지도 모를 항암치료를 자비로 받게 하더라도 흡연은 계속된다. 그런 위협은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작용하는 인센티브다. 흡연 감소에는 담배세가 효과적이다.

한편 '인센티브를 바꾸는 대신 단순히 시점을 재배열해서 사람들이 지금 당장 그 인센티브를 경험하게 만드는' 사회정책을 고안할 수도 있다. 자제심을 발휘하고, 지금 당장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자기의 이익에도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개인들의 과대 할인 성향을 상충해줄 제도를 고안할 수도 있다. 알라스카 주에서는 석유 및 가스 로열티를 개인에게 직접 나눠주는 대신 표결로 '알라스카 영구기금'을 조성했다. 기금의 운용수익은 매년 주민에게 배당금으로 지급된다. 이후 기금을 없애고 주민이 그 돈을 이전받아 각자 알아서 투자하자는 의견이 제기됐으나 매번 부결되었다. 알라스카 주 주민들 스스로 돈을 기금으로 묶어두는 것이, 과대 할인 성향에 대한 합리적인 자기 구속 전략(개별 가계가 적금이나 펀드를 통해 현금 자산유동성을 감소시키는 것처럼)이라는 데 동의한 것이다.

"강제적립, 강제보험 등 복지국가의 특징은 각종 간섭도 전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간섭이 아닌 척하려고 괜히 멀쩡한 제도를 건드릴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라고 참견하는 제도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데 필요한 습관을 들이도록 돕는 제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물간 사고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전략일 것이다." (조지프 히스,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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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6/24 00:2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cklist 2009/06/24 05:33 #

    제 얘기 같아요 ㅎㅎㅎ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인생관이랄까 그런 게 '어차피 인생은 힘들고 불행하니까 당장이라도 즐겁게 살자' 그런 사람들도 사실은 엄청 많은 거 같아요... 겉으론 낙관적인데 사실은 염세적인거죠. 근데 뭐라고 못 하겠어요. 당장 저부터...
  • 2009/06/24 08:3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cklist 2009/06/24 21:46 #

    앗, 반가워라~~~ ㅎㅎㅎ

    혹시 말씀하신 책이 '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이건 가요? 위에서 얘기한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가 이 책의 번역서라서요. 저는 이 책 한 권을 읽었는데, 신선했어요. 내용도 그렇지만, '아 이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이렇게 이론으로 현실로 전개시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생각하고 공부하는 근력이랄까, 그런 게 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리서치 자료 보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realsea1@hotmail.com 메일 쓰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 2009/08/13 03:31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cklist 2009/08/14 08:46 #

    이런 어찌어찌 답글이 늦었어요. 가져셔도 되셔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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