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출간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은 자본주의와 경제학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투른 대안을 내놓곤 하는 좌파에 일침을 가하며, '공정무역'을 그 예로 들었다.
"공정무역이 유행이다. ‘노동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지불하는 무역의 도덕성’이라는 공정무역의 모토는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정무역은 소비를 통해 인도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의식 있는 좌파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크게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원조가 아닌 무역”을 기치로 내건 공정무역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좌초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때 공정무역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은 더바디숍이 최근에 공정무역을 마케팅 수단에서 쏙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더바디샵이 노동에 걸맞는 적절한 보상을 하자 이듬해 과잉생산과 가격폭락이 일어나 오히려 더 큰 손해를 입힌 뼈아픈 일화를 전한다.(207쪽) 공정무역의 대명사 커피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무역을 지속하면서 커피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커피를 바다에 처박는 것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205∼206쪽)
저자가 의도는 공정무역의 정신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노동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매기려는 시도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생각만큼 단순한 일이 아닌지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품의 가격이든 노동의 가격이든 가격을 직접 조절하려는 욕망을 자제하라고 좌파에게 권고한다." (출판사 보도자료에서 발췌)
사실 나는 최근 유행하는 '공정무역' 운동에 대해 좀 저어하는 축에 속한다. 의구심이 넘쳐서 선뜻 손발이 나아가지 않는다. 얼마전에 포스팅 했지만 공정무역에 대해서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땅에서 식량 대신 커피나 바나나 같은 수출용 환금 작물을 키우도록 권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물음이 앞선다.
얼핏 따져보아도 수출 작품에 대해 '공정한 가격'을 보장받는 것으로 식량부족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약간의 돈을 더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돈 역시 고스란히 식량구입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공정무역의 대상이 되는 작물에 치중할수록 식량자급률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정무역 운동에는 무역의 '공정함'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해결하려는 자신감은 있지만, 식량 '무역'이라는 전제 자체에 대한 윤리적, 경제적 검토가 빠져 있다.
그런데 오늘 참석한 김규항 씨의 <예수전> 북세미나에서 이런 생각을 좀 더 보편화해 이해할 실마리를 얻었다. 이른바 '제 값 받기 운동의 한계' 그리고 회개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들이다.
"예수가 말한 '회개'를 단지 종교적 회심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예수는 종교적 회심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회심을 촉구한다. 예수는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서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28~29쪽) <예수전>
김규항 씨는 '회개' 즉, 가치관의 전복이 없는 사회변혁 운동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노동운동을 예로 들었다. 대규모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펼치는 노동운동이 '한 푼이라도 더 받자'는 이른바 '제 값 받기 운동'으로 흐르면서 노동운동이 사회변혁을 이끌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공정무역 운동도 어찌보면 이른바 '제 값 받기 운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근본적인 '회개' 혹은 '길 바꾸기'가 없는, 또는 자유주의 무역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없는 사회변혁 운동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 혹은 지나친 자신감과 욕망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철저히 알고 나면 다음 혹은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일까. 나로써는 분명히 알 길이 없고, 그러니 더 알고 싶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변화는 '지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선택'의 문제라는데 조용히 동의하고 있다. 지식과 선택은 함께 가지만, 근본적으로는 '선택'의 결연함에 대한 문제다.
- 2009/06/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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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4




덧글
2009/06/17 05:4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cklist 2009/06/18 22:14 #
네, 말씀처럼 근본적인 수정은 어렵고.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운 것을 두고, 입으로는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받아요.
이요 2009/06/17 09:37 # 답글
저는 <경제학 콘서트>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공정무역'이라는 용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커피를 바다에 처박는다)까지 있다니 더더욱 그렇군요.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인건가..-.-;;
cklist 2009/06/18 22:15 #
경제학 콘서트에 공정무역 얘기도 나오나봐요;;; 흉흉... 언젠가 읽었던 책인데 깜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