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곡물메이저 '카길'을 고발한 책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에 실린 '한국판 보론 - 한국의 밥상을 그들이 지배하도록 놔둘 것인가(장경호)'의 내용을 간추렸다.
식량위기, 만성적인 생산부족 구조
2007년부터 수면위로 떠오른 세계적인 식량위기 때문에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식량부족 문제가 현실로 드러나자 2007년 중반 이후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의 세계 주요 식량 수출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1990년대까지 세계 식량문제라고 하면 보통 상대적인 식량위기를 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전체로 볼 때 식량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았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식량을 충분하게 수입할 수 없는 극빈국의 취약계층이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비량이 생산량을 앞서게 되어 절대적인 식량위기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몇 년간 쌓이고 쌓인 식량부족 때문에 2007/08년에 식량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세계 식량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첫번째 이유는 곡물 대신 육류소비가 늘어기 때문이며, 두번째 이유는 중국과 인도의 소비가 빠르게 늘어나지 때문이고, 세 번째 이유는 바이오에너지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곡물의 양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쇠고기 1킬로그램만큼의 에너지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약 12~14킬로그램의 곡물을 소에게 사료로 먹어야 하며, 돼지고기는 약 6~7킬로그램, 닭고기는 약 2~3킬로그램 정도를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농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식량생산이 이같이 폭증하는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보다 농업기술이 덜 발전했고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낮았던 1990년대까지는 식량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높았는데, 오히려 생산성이 더욱 높아진 지금은 왜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낮은 것일까?
그 대답은 기후변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상이변과 세계화에 따른 식량생산 감소효과가 단위면적당 생산성 증대효과를 상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의 무기화, 식량의 투기화
2000년 이후로 식량부족이 누적되면서 식량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000/01년과 2006/07년을 비교했을 때, 쌀의 국제시장 가격은 약 74~77퍼센트 올랐으며, 소맥(밀)은 58.8퍼센트, 옥수수는 70.7퍼센트, 대두(콩)은 53.4퍼센트 올랐다. 불과 6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토록 곡물가격이 급등한 것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이 국제 식량가격 상승은 2006/07년까지의 상황만 나타낸 것이다. 가격폭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주하는 국제식량 가격 때문에 전 세계 37개국에서 크고 작은 식량폭등이나 소요가 발생한 것은 2007/08년의 상황이다. 도대체2006/07년과 2007/08년의 식량위기 상황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식량의 무기화'에 첫번째 해답이 숨어 있다. 식량위기가 현실로 나타날 징조를 보이자 2007/08년에 주요 식량 수출국인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인도, 우크라이나, 브라질 등의 국가들이 식량 수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곡물을 수축할 경우에 수출세를 부과하거나, 곡물별로 일정하게 정해진 물량만 수출하도록 허용하는 수출할당제를 도입하거나, 나아가 아예 특정 곡물에 대해서는 수출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까지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식량수출국들의 수출통제로 국제시장에서 식량공급이 축소되자 식량을 확보하려는 수입국들의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가뜩이나 상승일로에 있던 식량가격의 고삐가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
두 번째 해답은 '식량의 투기화'에 있다. 2006/07년에 발생한 서프프라임 모지지론 사태의 후폭풍으로 미국의 금융시장이 위기로 빠져들었다. 이때 금융시장에서 빠져 나온 투기자본이 새로운 먹잇감으로 사냥에 나선 것이 석유, 곡물, 금, 철강 등이다.
그 결과 최근 1년(2007/08)년 사이에 미국산 쌀값은 57.8퍼센트, 태국산 쌀값은 59.0퍼센트, 베트남 산 쌀값은 65.0퍼센트가 올랐고, 옥수수는 36.9퍼센트, 대두(콩)는 81.7퍼센트, 소맥(밀)은 169.8퍼센트나 올랐다.
식량 위기 속에서 웃는 곡물 메이저
이런 상황에서도 웃는 자들이 있다면, 국제 곡물 시장의 지배자, 먹을거리의 지배자인 곡물 메이저다. 2008년 4월 30일자 [월스트리스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카길은 2007년 12월에서 2008년 2월까지 단 3개월 만에 무려 10억 3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순이익에 비해 86퍼센트나 증가한 숫자다.
곡물 메이저 Major Grain Companies란 곡물의 저장, 수송, 수출입 등을 취급하는 초국적 곡물기업 가운데 독점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을 묶어서 표현하는 말인데, 현재는 카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루이드레퓌스, 벙기, 앙드레를 5대 곡물 메이저라 부른다.
곡물 메이저가 국제곡물시장에 행사하는 지배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세계 식량 총생산 가운데 87~88퍼센트는 자국에서 소비되고, 나머지 12~13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2억 5000만 톤 정도가 국제곡물시장을 통해 거래되는데, 이 거래량의 약 80퍼센트 정도를 5대 곡물 메이저가 취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카길이 약 40%, ADM이 약 16%, 루이드레퓌스가 약 12%, 벙기가 약 7%, 앙드레가 약 5%를 차지한다.)
곡물 메시저는 인공위성과 전세계 지사망을 통해 수집되는 식량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정보력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국제 곡물거래의 약 8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압도적인 시장지배력 때문에 국제시장에서 벌어지는 식량가격의 폭등이나 식량투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종자에서 슈퍼까지
미국의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세계 농산물 시장에 대해서도 완전한 개방을 요구하는데, 그 중심에는 곡물 메이저가 있다. 카길의 부회장을 지낸 대니얼 암스투츠는 198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농산물 협상에 미국이 제출했던 '예외 없는 관세화'의 초안을 작성했으며, 당시 미국 협상 대표단에서 농업 분야의 대표로 활동했다. 카길의 사장을 지낸 휘트니 맥밀런은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의 심사단으로 활동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라 소규모 가족농이 몰락하면서 식량 생산이 점점 더 대규모 기업농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업농의 지배력이 커지고, 국제 거래에서는 식량수출국의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데 그 중심에 곡물 메이저가 자리잡고 있다.
곡물메이저들은 세계 곳곳에 식량생산 및 유통, 식품가공에 관련된 네트워크를 거미줄처럼 구축해왔다. 국제 곡물거래의 절대지배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주요 생산자들과 계약생산이나 수직계열화의 방법으로, 마치 하청과 같은 관계를 만들어왔다. 종전에 이미 장악하고 있던 저장, 운송, 하역 등의 식량의 유통과 무역 분야에서 있어서는 물론 직접 투자를 통해 생산분야에서도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종자에서 슈퍼마켓까지"는 곡물 메이저들이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혹자는 이것은 세계식량체제 global food system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자재 - 식량생산 - 유통 - 식품가공에 이르는 전체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경제가 무너지고 세계적 차원에서 지배적인 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세계식량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다양한 초국적 기업을 하나로 묶어 초국적 농식품복잡체 agrifood complex로 부르기도 한다.
먹을거리 지배자와 위험한 밥상
곡물 메이저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지배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먹을거리가 더욱 위험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을거리 안전은 종자단계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데, 유전자조작농산물로알려진 GMO종자가 그것이다. 세계 최대의 GMO 종자 생산업체는 몬산토이며, 몬산토는 카길과 조인드벤처를 통해 GMO 종자를 공급한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콩의 50퍼센트, 옥수수의 27퍼센트가 GMO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축산물의 사료로,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되어 우리의 밥상에 오른다.
식량생산 단계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 그리고 동물성 사료와 화약약품이 먹을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 특히 세계식량체계는 식량을 장기간 저장하거나 장거리 운송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유통이나 가공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상품성의 유지를 위해 이른바 '수확후 처리 post harvest' 과정에서 다량의 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식품가공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것이다.
자국 내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먹을거리 역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개별 국가가 정책과 제도를 통해 안전성에 관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으며, 국민의 동의하고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친환경 농업으로 바꾸어 나갈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식량체제로부터 공급되는 먹을거리에 대해서는 개별 국자의 안전성 규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미국이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수확후처리'를 법으로 보장하면서 수입국에 대해서도 그러한 조치를 인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배후에는 먹을거리 지배자가 있다.
한국은 식량위기의 안전지대인가
2006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3퍼센트다. 그나마 자급이 가능한 쌀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식량(옥수수, 대두, 소맥 등)의 자급률은 5퍼센트도 안 된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포루투갈, 일본, 네덜란드와 함께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한국이 수입하는 식량의 약 60~70퍼센트 정도가 곡물 메시저를 통해 수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렇게 식량자급률 기반이 취약한데도 2008/08년의 식량위기 상황에서 식품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소요사태나 사재기 등과 같은 극심한 사회 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정답은 쌀에 있다.
우리 식량의 대표 품목인 쌀은 충분한 국내 자급기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가격폭등에도 불구하고 국내 쌀값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도 식량 위기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최소한 현재 수준 정도의 관리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2004년 미국, 중국 등과 쌀협상을 타결할 때, 2014년까지 국내 소비량의 8퍼센트에 해당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도 약속했으며, 10년의 협상시한이 끝나는 2014년까지는 쌀 시장도 사실상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 게다가 한미FTA로 인해 쌀 농업이 무너지는 시기가 훨씬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의 절대주식인 쌀마저 무너지고 나면 한국은 세계적인 식량위기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식량부족과 가격폭등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절대빈곤층이며, 농민과 서민은 물론 소수의 상위계층을 제외한 국민 대부분이 식량위기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식량위기 대비책은?
그렇다면 식량위기의 대비책은 없는가? 무엇보다도 식량주권에 대한 국민협약(혹은 사회협약)이 있어야 한다. 세계화의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적인 진영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식량주권 food sovereignity'란 과거의 식량안보 food security에 인권으로서의 식량권 food right을 새롭게 결합한 개념이다. 전통적인 식량안보 개념이 충분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양적인 개념에 그친다면, 식량주권은 식량의 양과 질을 모두 포괄한다.
식량주권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형식으로서 국민협약에는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데 따르는 생산자 농민의 의무와 권리, 국민을 대신하며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의무와 역할을 담을 수 있다.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식량자급률 목표를 법제화하는 것과 국내 농업을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식량자급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농지전용을 막고 투기목적의 농지매입을 봉쇄하는 농지공개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한 먹을 거리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내 농업을 화학농업에서 친환경농업으로 전환시켜 나가야한다. 지금과 같이 시장기능에만 맡겨두면 전체 농산물 가운데 10퍼센트 정도의 틈새시장에서만 친환경농업이 이루어질 수 있고,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영역에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를 창출하고 일정한 재원을 부담한다면 친환경 농업은 틈새시장을 넘어 국민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산자인 농민에 대해서도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도록 해야한다. WTO에서 허용하는 직접지불제도와 같은 것들을 포함하여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고 도시근로자들의 평균소득 대비 일정 비율 정도로 농가소득이 이루어지도록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한다. 또 먹을거리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수입되는 먹을거리에 대한 검사와 검역을 강화하고, 유전자 조작농산물GMO이나 광우병 위험 쇠고기와 같은 안전성이 분명하게 입증되지 않은 먹을거리이 대해서는 '사전 예방의 원칙'을 적용하여 수입을 차단해야 할 것것이다.
더 이상 WTO나 농업협정문을 들먹이지 말자. 먹을거리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방법은 찾을 수 있다. WTO와 자유무역 FTA이 판치는 속에서도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미국이나 EU의 정책과 제도를 보라.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모아 주어진 한계와 조건 속에서 방법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 2009/04/30 15:57
- cklist.egloos.com/493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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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이요 2009/04/30 17:25 # 답글
저는 이 책 밥벌이 때문에 끝까지 읽긴 했는데,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군요. 그냥 카길 나쁘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는 중. ^^;;;;
cklist 2009/04/30 17:32 #
아, 그죠... 좀 산만하고, 집중하기도 어렵고, 디테일을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정리를 안 해주니까 좀 피곤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읽은 건 개정판인데, 거기에 실린 보론이 훨씬 쓸만한 것 같아요. 저 보론에 실린 이야기들을 차라리 단행본으로 한 권 따로 썼으면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심 분야라 꾹 참고 읽기는 했지만.... 친구한테 권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은... 그래도 카길은 나빠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