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 보다 '공정푸드' 굶주리는세계,식량주권,농업

지자체, NGO, 생산자 단체들이 '로컬 푸드'란 단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1) 로컬푸드란 푸드마일(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이동거리)을 줄인 식료품인데, 흔히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된 것을 뜻한다 2) 운송과정에서 에너지를 적게 쓰기 때문에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고 (3) 유통 단계를 줄이기 때문에 생산자(농가) 소득을 높여준다 (4) 신선한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일부는 이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식으로도 풀어 쓰기도 하는데, 거대 거점 도시에 인구가 밀집한 나라에서 농산물의 지역 생산, 지역내 소비가 인구통계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이는 '로컬푸드'란 개념이 품고 있는 다양한 논점 가운데서 특히 환경(푸드마일), 농가소득(지역경제), 식품안전성에 초점을 맞춘 해석인데, 좀 아쉽다.

우선 '로컬푸드'에서 '푸드마일'이 강조되는 배경을 보자. 유럽에서는 EU로 경제가 통합되면서 농산물의 생산, 유통에 생긴 변화가 이런 논의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폴란드에서 재배한 당근을 독일에서 세척하고 네덜란드에서 포장해 영국의 슈퍼마켓에 진열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영국의 Tesco같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메인드 인 브리테인'을 확인하고 당근을 산다고 하자. 이게 '국산' 당근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EU에서는 폴란드에서 생산한 당근이라도 영국(최종 소비국)에서 중요한 가공 과정을 일부라도 거치면 '메이드 인 브리테인' 라벨을 붙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내용물의 종류와 상태를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신선식품은 그렇다 하더라도, 반조리 식품이라면 좀 복잡한 얘기가 된다. '메인드인 브리테인' 라벨이 붙은 인스턴드 치킨 커리를 먹었는데 치킨은 덴마크, 야채는 독일과 네덜란드, 쌀이나 향신료는 다른 곳에서 왔다. 적어도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는 사실상 '국산 먹거리'가 없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를 쓸대로 써 가면서, 자국의 농가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면서,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산됐는지(이 부분에서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우려도 한 몫한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람이 먹는 음식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원료로 쓰는 것을 금지하지만, 가축 사료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다)도 모르는 음식을 먹는 게 과연 적당한가? 하는 물음이 나왔다. 그러니 속뜻으로만 보자면, '로컬 푸드'에서 '로컬'의 실제적 의미는 사실상 '국산國産'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으로 국산의 개념이 희미하고, 노동력 이동이 유연한 유럽에서는 '푸드마일'을 얘기하면 그 외의 논점들이 줄줄이 따라 나오기 때문에 '로컬푸드' 개념에서 '푸드마일'이 강조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환경 관련 NGO들이 NGO의 주축을 이루며 특히 먹거리 관련 의제를 선점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 이 개념이 들어오면서 원래 배경과는 다른 이유로 '푸드 마일'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버렸다. 게다가 우리 상황을 반영한 적절한 번역어도 없이 '로컬'을 '지역'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그 의미가 더욱 좁아졌다.

'푸드 마일'을 줄이자는 게 나쁜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푸드마일'을 강조하면서 로컬푸드 개념이 가진 보다 '통합적인' 논점들이 축소 되었다는 데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농산물의 원산지 확인이 비교적 쉽고 유통 거리 또한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 실정에서는 '거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거리'보다 더 중요한 논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통 경로와 노동 환경, 식품 안정성이다. 어떤 음식이 '로컬'인가 아닌가보다 '공정하게(Fair)' 생산되고 가공되고 유통되는가가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가능한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음식이 물론 가장 좋지만, 한국의 규모에서는 지역을 넘나드는 유통은 불가피하다. 농산물의 경우, 국가를 넘나드는 '무역'이 아닌 다음에야 더욱 그렇다. 문제는 생산 지역의 경제와 생산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의 특정한 유통 방식에 있다. 대형 마트를 비롯한 리테일러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생산자들은 협상 능력을 잃었다. 대형 마트에 치인 지역의 소매점들이 문줄줄이 문을 닫는 판에, 대형 마트가 식료품 판매로 올린 수익마저 지역 경제 밖으로 빠져 나간다. 지역의 자영업자들은 일자리를 잃는데 대형마트의 하청 계약직은 늘어난다. 이런데도 대형 마트가 제품을 지역에서 구매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로컬'이지만 '공정하지'는 않다.
 
노동 조건과 식품 안정성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형 리테일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산자 가공 업체에 부담을 지운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가공 업체의 노동 환경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돼기고기를 생각해보자. 국산 돼지인지 수입 돼지인지도 중요하지만, 국산 돼지라고 해도 어떤 환경에서 사육된 돼지인지, 어떻게 도살되어 어떤 수준의 위생 수준을 갖춘 공장에서 누구의 손에 의해 가공되었는지 또한 중요하다. 국산 돼지이기만 하면, 최저 수준의 임금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안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공장에서 일하는 (산재 보상조차 제대로 못하는)외국인 노동자가 가공한 고기라도 괜찮을까. 위생 시설은 또 어떨까? 이런 먹거리가 안전할까? '로컬'이지만 '공정하지'는 않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운송된 농산물이긴 한데, 그 짧은 거리를 거쳐오는 동안 화학 약품에 세척되고 겹겹이 두른 비닐로 압착 포장되거나, 큰 덩어리로 뭉치 포장되었다. '로컬'이지만 '공정하지'는 않다.

'로컬 푸드'는 지역 경제, 환경, 사회적 유대 강화, 식품 다양성과 안전성 개념을 두루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개념이다. 이같은 '로컬 푸드' 운동의 뜻을 보다 잘 살리려면, 한국적 상황에서는 '로컬 푸드'보다는 '공정푸드'로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cklist.egloos.com/tb/4927274 [도움말]

덧글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