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cklist.egloos.com

방명록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사회과학 (책)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우석훈.박권일 지음 / 개마고원

1.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2. 싫은 절에서 살아남는 법을 궁리한다.
3. 싫지 않은 절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다.
4. 절을 짓는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라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1번에 해당한다. "기술은 부족하고 인건비가 비싸서" 기업하기 힘드니, 철 모르고 '절 타령'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담론은 한미 FTA를 거치면서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 담론으로 자리잡았다. 기업이 무언가를 요구하려 할때, 정치인들이 정권이 경제정책을 정당화하려 할때 즐겨 사용한다.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50가지 비밀>을 숙독하는 개인은 2번에 해당한다. 100명 가운데 1명이 이기는 게임이라면 내가 그 한 명이 되어보겠다는 대응전략이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3번에 해당한다. 위기의 본질은 기업 외부가 아니라 내부, 즉 조직론의 부재에 있다는 게 주된 입장. 절이 싫다고 중이 떠나는 절이라면 그 절이 제대로 유지될리 없고, 싫은 절에서 혼자만 살겠다고 궁리하는 중이 판치는 절이라면 그 역시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싫은 절의 내부를 진단하고, 싫지 않은 절을 만드는 방법을 궁리한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일종의 외인론인데 기업이 외부와 경쟁하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단다. 그보다는 '외부와는 경쟁하고 내부에서는 경쟁을 줄인다'는 경제학의 통찰이 왜 기업의 내부에서 실현되지 않는 것인지, 누가 기업에 필요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특히 IMF 구조조정 이후 한국 기업에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찬찬히 따져보자는 거다.

이 책 무척 재밌다. 저자 분은 "조직에서 승진을 앞둔 사람이나 조직의 리더가 읽으면 얻을 게 많을 책"이라고 하셨지만, 개인적으론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푹 빠져서 읽게 될 책이라고 확신한다. 2명만 모여도 '조직'이니, 세상사 대부분이 '조직론'의 범위에 있다.

이른바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류의 책이 던져준 찜찜함이 단번에 씻기는 것 같다. 상황을 들여다보는 냉정함도, 인과를 혼동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절이 싫으면 싫은 이유가 반드시 있다. 중이 답답하면 절은 속터진다. 그래봐야 국민경제라 도망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진화경제학, 복잡계 경제학 등 최근의 경제학 연구의 흐름을 엿보는 것도 무척 재밌다. 이론을 갖고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업의 맛을 조금 엿본 것 같다.

조직론 : 기업을 단순한 생산함수이자 내부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로 가정하던 경제학의 전통적 가정에서 나아가 기업의 내부에 주목한다. 같은 자본,노동을 투입했을때 왜 같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지 묻는다. 일본식 기업과 미국식 기업이 어떻데 다른지, 하청 혹은 협력업체가 왜 생겨나며 기업은 생산공정을 어디까지 외부화하는 것이 옳은지, 인센티브와 동기이론, 정보의 흐름 등을 연구 주제로 삼는다.

<경제적 변화의 진화경제학> (1982) : 넬슨과 윈터의 연구. ‘루틴routine'이라는 장치가 존재하고, 좋은 루틴을 가진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서 많이 살아남는다. 이른바 뮤턴트라 부르는 돌연변이들이 나타나 조직 차원에서의 적응과 진화가 계속 된다.

영속성 : 최근의 흐름으로, 경제학자들은 조직이라는 눈으로 바라본 기업의 목표가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남는 것’ 즉 ‘문닫지 않고 버티는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 이윤극대화 역시 영속성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여러 측면에서 제기된 조직론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좌파 경제학과 조직론 : ‘경제적 동기’에 기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작동한다. 이론적으로는 센Amartya Sen이 1996년 인도의 사례로 노벨상을 받았고 UN경제발전모델에 한 중심이 되었다.

개인과 조직의 비대칭성: 가족모델과 군대모델. ‘사랑’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조직비용의 문제이다. 조직 내부를 감시와 통제구조로 만들었다가는 거래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진다. 감시와 통제는 값싼 수단이 아니라 가장 고비용의 조직관리체계이다.

조직 간의 경쟁 : (윌리엄슨이 지적했듯) 경쟁은 기업의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기업 내부에서는 경쟁이 극렬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경쟁을 제약한다. 조직 내부에서 경쟁이 강해지면 조직원들이 피곤해져서 버틸 수 없고, 정보 흐름의 차단막이 생겨서 효율이 떨어진다. 조직 내에 있는 공식 조직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쟁은 라인 조직과 스태프 조직으로 불리는 일종의 참모 조직과 실제로 생산기능을 수행하는 실무 조직 사이의 경쟁이다. 기획부서와 사업부서 사이에도 유사한 관계가 형성된다. 가장 골치 아픈 일은 이런 조직 내부에서 “도대체 누가 일하는가”라는 불평이 나오는 경우다. 특정 직무를 맡는 개인들에게 ‘늘 이기는 전략’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 암묵적 조절장치를 만든 것이 전체적인 조직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비공식 조직 간의 경쟁 : 내부화가 진행되면 그 안에서 소그룹들이 생겨난다. 기업의 내부는 아무리 경쟁의 룰을 도입하거나 효율성을 최고의 기준으로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고조직의 세계이다. 구성원 사이의 경쟁 수준을 기계적으로 높이면 오히려 여기에 대응하는 개인들은 소그룹을 만들어 경쟁을 소그룹 사이의 경쟁으로 전환시키면서 자신을 둘러싼 직접적 경쟁을 줄이는 방향의 대응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IMF이후 인센티브제 등 새로운 제도들이 경영자들이 기대했던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소그룹의 등장을 통한 경쟁 제한의 반향으로 진화하게 됐다. 이런 현상은 조직의 효율성과 창소성을 급격하게 줄인다.

돈 장사와 사람 장사 : ‘영광의 30년’동안 완전고용 상태에서 운용되던 국민경제가 실업이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이런 문제가 결국은 ‘세대간 불균형’문제로 확대된다.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발생한 일종의 ‘생산의 화석화’라는 경향적 법칙이 국민경제라는 틀 내에서 돌고 돌아 금융화화 연결되면서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가되었다. OECD 국가들은 지나친 금융화를 통해서 산업 부분이 공동화를 일으켜 화석경제로 몰락하지 않도록 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지금 부족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조직’모델이다. 조직이라라는 요소가 국민경제 내에서 가장 ‘큰’ 병목을 일으키는 중이다.

<제도는 어떻게 사유하는가> (1986) : 메리 더글라스. 이 인지심리학 연구는 경제조직들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가벼운 등산을 떠났다가 예상치 못한 눈보라를 만나 동굴에 갇히게 딘 상황에서 어느 친구가 카드 게임으로 희생자를 결정하고, 그를 잡아먹자고 제안했다. 희생자가 결정되고 살육과 실육의 비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눈보라는 오래 가지 않았고 이들은 구조되었다.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피고들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유죄로 판결이 났는데, 아무리 고립된 상태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라도 그 안에서 모든 상황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면, 그 같은 비극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되어 사회의 존속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이 사례가 제시한 질문은 과연 한 사회 내에 있는 조직이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고 할 수 있다.

선한 이미지 : 정보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브랜드의 가치 가장 높은 가치는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말로 착하거나 유능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모습은 그렇게 보이는 ‘의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기능론적으로 보았을때, 군대는 살인을 하는 집단이지만 그들은 또한 왕의 충실한 수족이자 민중의 복부자기고 싶어했고, 또 그렇게 자신들이 사랑을 받을때 가장 강력한 군대가 된다. 군대야말로 ‘사람 장사’에 가장 익숙한 조직의 원형이다.

왜 열심히 일하는가 : 종신고용제와 군대식 직계 그리고 가족경영이 묘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움직였던 한국식 자본주의가 만난 제일 큰 장벽이 “왜 열심히 일할 것인가”를 구성원들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직과 구성원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들이 한국의 경우, 너무 급속하게 사라져버렸다.

암묵지 : 풀라니 Michael Polanyi는 우리가 보통 지식이라고 부르는 ‘형식지’에 비해서 ‘문자로 전환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종류의 지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고, 이를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불렀다. 이 내용이 경제학적으로 들어오면서 ‘체화지식’ 또는 ‘숙련도’라는 개념이 되었다. 조직은 되도록 개인의 체화지식과 개인 네크워크를 표준화시켜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이전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려하고, 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지식을 표준화시키기 어려운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모든 암묵지가 형식지(명목지)로 전화될 수 있다면, 조직 내부에서의 평가는 훨씬 더 투명하고 표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에는 조직으 구성원들에게 모두 암묵지의 세계는 잊어버리고 오로지 명목지만을 대상으로 행위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걍우 평가 기준과 방식에서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순진한 고급 간부들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안이한 결론은, 업무 표준화를 높이고,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대체 가능성을 높이고 이런 방식을 통해 절대로 누구에게도 권한이 집중되도록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폴라나의 암묵지에 대한 지적은 이렇게 극단적인 표준화 방식을 택하면 결국 조직은 바보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의 “...”을 예로 들면, 그 빈칸을 말로 채우는 조직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기업은 생산활동을 잘 해서 최상의 상품을 만들어 이윤을 발생시키기 위해 생겨난 조직이지, 갈등을 줄이는 것을 최선의 목적으로 하는 사교집단이 아니다.

협동게임의 실패 : ‘암묵지의 딜레마’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조직원들 사이의 경쟁이다. 조직구성원은 때때로 위장전술을 사용하게 되는데, 암묵지는 그 정의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외부에서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 의태나 위장전술이 더욱 발달하게 된다. 이런 경우 기업의 하부에서는 “일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게 된다. 한편 IMF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암묵지를 다루는 방식을 잘 알지 못했다. 지식경제의 시대에 오히려 기억상실증에 걸린 조직을 만든 것이다. “담당자가 퇴사하셔서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라면 진지하게 조직의 암묵지에 대한 관리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기업의 내부 :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이는 명제를 하나만 거론하자면 기업의 내부까지 완벽하게 시장원리로 구성한 조직은 결국 망한다는 것이다. 조직은 지옥처럼 변해가고 창의성과 창발성 같은 긍정적 요소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팀원과 팀장 : 개인업무의 전무성을 강조하는 조직은 동료들끼리 옆을 보고 앉을 수 있게 해서 작은 팀을 구성하게 하고, 팀장이 대게 창가에 앉아 등 뒤에 창문이 오는 배치를 따른다. 팀원들 사이에는 협조를, 팀장과 팀원들 사이에는 위계를 설정한 조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배치다. 잘못 운영되는 부서에서는 진짜 부서에서 벌어지는 일은 부서장만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신 그 같은 창가에 앉아 있는 다른 팀장과 협동 라인이 생겨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창가에 앉은 팀장들 사이에서만 지나치게 정보가 유통될 때 조직에서 하급 직원들이 이를 ‘악의 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쁘띠 임프(petit imp) : 한국식 포디즘의 가장 큰 약점은 조직 내부의 문제를 조직의 외적 성장에 의해서 풀어오는 방식으로 해소했다는 것이다. 한국 건설업이 지금 양상으로 전개된다면 건설자본의 주역들와 그 지지자들이 한국의 평화국가 모델 대신 -쁘띠 임프(petit imp)라고 정치학자들이 표현하는 소제국주의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 때 예전에 없이 국익이라는 단어가 논의의 전면으로 부각된 적이 있었는데, 실제 국익의 주요 내용이 이라크 재건복구에 한국 건설업체가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았다.

감성경영과 감정노동 : 기업이 ‘감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생겨난 또 다른 흐름은 아주 무섭다. 품질과 판매실적이 비례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되면서 마케팅의 영역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인데, 이런 과정에서 기업이 해야 할 판매의 일부를 외부화를 통해 맡게 된 외부 유통업체가 마케팅에 특화되면서 감정노동이라는 새로운 패턴의 노동이 생겨나게 되었다. 감정노동에서의 숙련도는 다른 일반적 노동과는 아주 다른데, 감성경영이 조직구성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식의 진화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감정노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는 셈이다. 이런 감정노동자들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아노미나 병리학적 증상은 아직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cklist.egloos.com/tb/3724867 [도움말]

덧글

  • 낭만여객 2007/08/27 10:44 # 답글

    우석훈씨가 그 88만원세대를 쓰고 한미FTA를 폭주를 멈춰라의 저자시군요. 전체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일관성이 있으신게 신뢰가 갑니다. 어제도 친구와 토론을 하는데 그 친구의 시각은 1번, 저는 3번이라서 아주 피가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_-;
  • cklist 2007/08/27 10:54 # 답글

    낭만여객 님 / 아 네네. 그 분이 그 분. <88만원 세대>가 질문이라면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해요. 모두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로 묶여 나온 것들이고요.

    1번이 미약한 중의 정신건강에 즉각적인 도움이 되겠지만, 가봐야 어디로 가겠어요. 다른 절이죠 ㅋㅋㅋ. 떠나기 전에 지금 겪는 어려움이 특정 '절'의 문제인지, '종단'의 문제인지 우선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Josée 2007/08/27 14:36 # 답글

    오 3번이라니. 굉장히 끌리는 책이로군요-
    전 3번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물론 얍삽하게 2번에도 기웃거리긴 하지만 ㅋㅋ)
  • cklist 2007/08/28 09:11 # 답글

    Josée 님/ 저는 아침에 1번, 점심 먹고 2번, 퇴근 무렵엔 3번이요. 농담반 진담반입니다^^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