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테리 조지 / 출연 : 돈 치들, 소피 오코네도 외
"이제부터 외국으로 전화를 거세요"
"그들이 수치심에라도 우리를 도울 수 있도록 절박하게 우리의 상황을 전달하세요."
외국인과 언론이 모두 빠져 나간 호텔엔 1,200여 명의 '르완다인'만 남았다. 사람들은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뉘어 죽어간다. 그 땅에는 자신을 '르완다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강요에서든 아니든 그 땅에서 사람들은 '후투' 혹은 '투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런 이들이 '르완다인'이라는 이름으로 르완다 밖의 세계에서 다시 버려지는 상황의 아니러니. 그 상황을 생각하며, 저 대사를 들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광장히 잘 만든 영화다.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정치와 전쟁의 본성, 언론의 매커니즘, 인간의 비열함과 숭고함, 그리고 무엇보다 연민의 한계와 공감의 힘을 적절한 무게로 담아냈다. 격정적인 분노나 토로 없이, 화면 가득 피를 뿌리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의 힘으로 만들어낸 영화라는 점에서 그 성취가 더 크게 와닿는다.
Q3. 이 영화는 전쟁 상황을 다루지만, 전쟁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호텔 르완다>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폴의 삶은 결국 평범했던 사람이 아름다운 용기로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보편적인 스토리라는 점을 구현하고자 했다. 또한 끔찍한 학살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학살 자체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휴먼드라마이지, 공포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테리 조지 감독 인터뷰 중에서)
따져보면, 전쟁과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한 영상이나 잔혹한 사진, 절규 속에서만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은 광장히 안일한 통념일 뿐이다. 그런 영상은 연민을 끌어낼 수는 있어도,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그런 영상은 참혹한 현실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게' 만든다. 끔찍함을 느끼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할 수는 있지만 '내 문제'로 생각하게 하진 못한다. 그게 편의적으로, 습관적으로 만들어 내고 소비하는 스펙터클의 한계다.
그런 둔함에 비하면 이 영화는 무척 똑똑하다. 주인공 폴부터가 '처세라면 쫌 아는' 고급 호텔 지배인이다. 그가 갖고 있는 지론이라면 '권력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가족의 안녕을 지킨다' '그 과정에서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정도. 그래서 자신의 집으로 피신한 투치족 사람을 숨겨주는 동시에 후투족 장교가 로비에 맡겨 놓은 가방에 양주를 챙겨 넣기도 하고, 돈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영화는 그런 그가 1,200 여 명의 난민들을 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시작한 일이 어떻게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로 나아가게 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폴을 단숨에 영웅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버린 덕분에 마지막에는 진짜 영웅을 만들어냈다.
르완다의 현실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론)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실제로 벌어진' 것처럼, 주인공 폴이 만들어낸 현실 역시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는)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한쪽에서는 백만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한편에선 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지켰다.
두 현실의 엄청난 차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묵직하다. 어느 쪽을 생각하든 세상에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 다만 하나는 있는 힘을 다해 막아야 할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있는 힘을 다해 펼쳐야 할 일이다.
세상이, 사람들이, 내가 밝은 것만 바라보다 '순진하게 당하는' 것도 싫고, 어두운 것만 생각하다 '자기 꾀에 넘어가는' 것도 싫다. 그러니 좀더 차가워질 일이고, 좀더 따뜻해질 일이다. 어렵다. (영화 얘기하다 결국 또 삼천포로... 이쯤되면 삼천포로 빠지는 것도 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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