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과 슈테판 츠바이크, 인문학 (책)

"대학 3학년생이 되었을 뿐인 스무살 때에 형들의 투옥사건을 만난 나에게는, 형들을 구축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이 그후의 '생활'로 되었다. 그것은 좀더 보편적인 대의에 이어지는 길이기도 했다. 허나 그것은 또한 스스로의 무력함과 왜소함을 알게 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나는 단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운명의 형태를 속속들이 지켜보도록 스스로에게 명령을 해왔을 따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와 인간, 민족과 개인, 고향과 유망(流亡)그리고 고통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해서 거듭거듭 많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208 페이지

"위인이나 영웅은 다만 존재하는 것만으로써 수십년,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의심함 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뿐이다.... (실제 정치라는 영역에서는)뛰어난 인물, 순수한 관념의 인간이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가지는 떨어지지만 교활한 족속의 인간, 즉 흑막의 인간이 결정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은 자기방어를 위해서 이들 힘의 배후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그들의 위험한 힘의 비밀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12페이지

슈테판 츠바이크는 1929년에, 서경식은 1991년에 저 글을 남겼다. 저들은 공통점은 역사와 인간의 비참을 응시하는 일을 통해 세계에 참여했다는 데 있다. 저들은 때론 세심하게, 때론 대담하게, 소수자의 예리한 감수성을 바탕에 두고 희망과 절망의 사이를 진지하게 오가며 그 여정을 기록했다.

역사가 그러했으므로, 그들이 읽어낸 현실은 인간과 세계의 비참을 까발린다. 어떤 이들이, 어떤 역사가 집요하게 숨기거나 외면하려고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치부나 결점까지도 드러내면서. 인간 보편의 수치를 감수하면서.

그 정신의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저들의 어떤 개인사가 그 작업으로 그들을 이끌었건, 저들이 행한 인간의 비참을 응시하는 작업은, 특히 그들이 추상적으로 말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이 눈 감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강해지지 마련이다. 추상적인 문제를 구체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려, 문제가 자신을 관통해간 역사를 살피는 일에서 공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휴일 아침, 츠바이크와 서경식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과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기기 쉽지만, 이는 어떤 것보다 어렵고, 어떤 결단보다 영웅적이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건 순간뿐만 아니라 흐름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고, 행위의 지속성을 요하는 일이다. 희망없이 그 어려운 작업을 견뎌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응시'란 그냥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똑바로 보기위에 매순간 싸우는 일이다.(나란 인간이 제발 그걸 좀 알았으면 싶다. 시야를 넓히고 좀 차분해졌으면 싶다. 언제 배우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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