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7 15:16

블로그 소개 개발 학/업 노트

김현주의 블로그입니다. 국제개발협력 이슈를 주로 이야기합니다.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배우고 느낀 것을 나누고 싶어 글을 씁니다

<세계의 빈곤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야(사계절, 2016)를 썼습니다국제아동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했고 교육 앱을 만드는 회사 에누마에서 일합니다. 

이 블로그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인문사회과학 도서 담당자(MD)로 일하던 2004년 무렵부터 썼습니다. 시기에 따라 제가 품은 질문이 바뀌었고 이 블로그의 글도 그 흐름을 따라 주제와 소재를 달리 합니다. 한 마디로 소개하기 어려운 블로그가 되었는데 여기에 글을 쓰는 이가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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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1 22:36

엘리트 독식사회 - 지금, 여기의 책 읽기가 가능하려면 책으로 읽는 발전론

추석 연휴 틈틈이 읽었다. 밀리는 차 안에서, 아이 데리고 간 미용실에서, 전 부치고 마당에 나와 앉아 한숨 돌릴때.

<엘리트 독식사회 -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열망과 위선>. 세계화와 함께 승승장구한 글로벌 거대 기업 - 불평등이 확대되는 세상을 만든 주범이고 공모자이면서, 그 필드에서 익히고 터득한 지식, 자본, 상징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이른바 '마켓월드'출신 전향자들을 겨냥하는 책이다.

그들에게 세상을 바로 잡는 일을 맡겨도 좋은가?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력을 확대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소셜 굿'의 용어를 차용하며 공적영역을 '마켓월드'의 문법으로 다시 쓰는 현상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고, 논의해야 하는가?

[타임]의 논설 주간인 아난드 기리다라타스가 썼다. 나로써는 이 주제로 430여 쪽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오는, 그가 속한 세상 - 아니 장소에 우선 눈이 갔다. 그가 속한 장소는 이 질문들이 첨예하게 던져지는 각축장이고, 430쪽을 채울 만큼의 각론과 디데일, 자본이 움직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의 논설주간이 이 문제에 천착할 수 있다. 위의 질문이 묵중한 질량을 갖는다.

내가 속한 장소에서는 어떠한가. 이 책의 논의를 한국 사회로 가져오는 지점에서는 읽는 내내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1) (책임질 것이 많은, 직접적 책무를 갖는) 국내 정치로부터 관심을 끄고, 시민 공동체의 기반을 흐트리면서까지 밖으로 밖으로, 세상의 빈곤한 곳으로, 그래서 개입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곳으로, (개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개입을 정당화하기 쉬운 곳으로 달아나는 이른바 '세계주의자들' 2) 그 세계주의자들과 쉽게 영합하며 씽크탱크 역할을 하는 마켓월드의 전향자들. 그 전향을 통해 마켓월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는 이들 3) 그 틈에서 민주주의의 원칙과 실천에 이런 흐름이 미칠 변화를 고민하는 사람들. 공적 영역의 위축되는 입지와 정책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숙고하는 사람들. 이들 진영의 첨예한 논쟁.

한국 사회에 이 질문이 얼만큼 유효한가? 한국 사회에서는 이는 얼만큼의 질량을 가진 주제일까? 이 책에서 '세계주의'를 생략하고 읽는다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임팩트 투자, 소셜 섹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소셜 섹터는 자본 주도가 아닌 정부, 공공섹터 주도라는 점에서 이 책의 논의와는 기본 지형부터 다를 것이나... 부지불식간에 닥쳐올 질문(자본)을 미리 읽어두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한국 사회는 그 부지불식의 속도가 정말 빠르기 때문에. 혹은 한국 사회가 미국의 선례를 주어진 답으로 따라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세계주의'를 그대로 끼워 두고 읽으면 어떨까? 이 지점에서 나는 사실 갈팡질팡하는데, 한국의 정치 공동체, 시민 공동체가 '세계'를 숙고하는 지점이 있는지, 과연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이 말하는 세계와 한국의 온도차를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글로벌 빈곤과 불평등에 반대하며 프로젝트식 처방을 수행하는 기관에서 일할때 한국인인 나는 줄곧 '검정고시 출신' 이었다. 개발협력을 떠받치는 국제규범을 속성으로 익히고, 좋은 프로젝트 사례를 곁눈질 하고, 이 분야에 참여하려면 꼭 필요한 도구들(tools)을 익히는 것으로도 마음이 바빴다. 그것이 기본기였다.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프로젝트를 부끄러워하고 뛰어넘는 것, 그래서 규범의 일부가 되고, 외딴 섬처럼 '우리끼리' 하는 개발협력을 넘어 보다 넓은 생태계에 안착하는 것이... 우리 세대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의 과제였고, 여전한 과제다.

동시에 생각한다. 아무리 공통의 문법이 중요하다고 한들, 프로젝트의 수행성이 중요하다고 한들, 우리가 USAID, DFID, ODI 등의 전략을 복제한듯 사고하고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 표준화한 규범은 그들의 관점과 이해를 반영하는 도구인데, 그것을 잘 숙지하는 것만이 마냥 능사일리 없다. 부끄러움을 극복할 것도 과제이지만, 고유의 지향과 목적지를 찾는 것 또한 과제다.

한국의, 한국 국제개발협력에서 중요한 질문들은 무엇이고, 이 책의 논쟁에서 우리가 밑줄 그어 읽을 지점은 어디일까?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발전 경로에서 파생한 고유한 것이므로, '지금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 역시 한국의 '오늘'에서 나온다.

이 책에서는 글로벌 빈곤을 없애는 구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글로벌 기업, 특히 미국 기업들을 감시하는데, 지금 한국에는 글로벌 빈곤을 없애는데 기여하겠다고 나서는 (CSR 사업에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 바로 제 길을 그려 나오는) 토종 기업이 있나? 미국의 글로벌 기업이 노동권 보장, 환경보호, 세금 도피와 시장 개척을 위해서 '세계주의자'의 가면을 쓰고 나선다면, 한국 기업은 그런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런 가면이라도 쓰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 요구가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노동력 착취를 해도 국내에는 전해지지 않으니 눈치조차 볼 필요가 없다. 인종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을 실제로 하든)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라는 식으로.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은 여전히 한국과 세계, 특히 개도국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일에 더 열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종차별을 안 하려면, 인종에 기반한 차별이라는 게 있으며, 그걸 모르면 부지불식간에 차별을 범하므로, 모르는 것이 결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으며, 감시자가 있으므로 모르는 체하며 슬쩍 넘어갈 수도 없을 것임을 깨우쳐줘야 하는 역할 같은 것.

혹은 개도국 어디에나 바로 당신과 같은 사람이 그 나름의 세상을 짓고 살고 있으며, 그들은 빼앗긴 것 혹은 돌려받지 못한 것이 있으므로 청구권을 갖을 뿐만 아니라, 마냥 내주지만은 않을 것임을 몇 번이고 말해야 하는 역할 같은 것.

그리고 게이트 키퍼 역할도 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한 글로벌 자본과 영향력으로 무장한 '마켓월드'의 전향자들이 한국의 공적 영역, 그 일부인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겨냥하여 파고 들때, 건강한 정책과정을 작동 시켜 그들의 제안을 평가하고, 취사선택하도록 하는 역할. 서구의 국제개발협력 규범과 실천을 마냥 따라 배우려는 '검정고시' 출신으로만 남아 있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세계의 유수한 글로벌 자선 펀드가 한국의 공적 또는 사적 자본을 초대해, 세계로 함께 나가자 제안 할때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힘을 보태어 협력하며 일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 동시에 힘을 보탤 판 자체를 잘 선별해야 할 과제.

나는 이런 역할들이 끼인 세대가 감당하고 동시에 누려야 할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촉이 있다면 빼앗고 쌓고 힘을 행사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온 입장에서의 감각이라기보다는, 행사되는 힘을 기민하게 읽어내며 때론 싸우고 때론 협력하며 살아남아온 입장에서의 감각이다. 아파본 사람이 타인의 아픔 알지 않겠나. 아픔을 안고서도 일어나 앞을 일구려는 사람들의 언어가 있지 않겠나. 한 시대의 국제개발협력에 이런 챕터를 한 장씩 써내는 것이.. 목표가 되면 어떠한가. 그것이 '글로벌 빈곤 문제의 해결사' 되는 것보다 더욱 설득력이 갖는다.

이제와서, 나에게서는.

이렇게 적고 나니 <엘리트 독식사회>를 내 분야에 한정해 좁게 읽고만 셈이 되어버렸지만. 시장이냐 공공이냐는 질문과 더불어 누가 어떤 맥에서 묻고 있는지를 잘 가늠해보고 싶다. 여기에는 장소가 얽힌다. 이 장소성 안에서 충실히 살아내야 세계주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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